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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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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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
한자 | 完州 松廣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藏遺物 |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송광사 (대흥리) |
지정(등록) 종목 | 보물 제1274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8월 8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소조/불상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일괄 (불상 3구, 복장물 2종 6점) |
웹사이트 |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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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20
이곳 삼존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했으며 석가여래는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었고(은) 우리나라 삼존불상 중 큰 편에 든다.
1993년 불상 안에 들어있던 복장유물 12종 가운데 불상조성기 유물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은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에서 나온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인조 19년(1641) 6월 29일에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淸憲) 등 17인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2021(송광사 작성)
송광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 좌상은 청헌淸憲 법령法令 등 조각승 17명이 1638년부터 1641년(인조19년)까지 4년여에 걸쳐 흙을 주 소재로 사용하여 조상한 것이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상이, 바라보는 면으로 오른편에는 동방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상이, 왼편에는 서방 정토세계의 아미타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상을 ‘삼세불三世佛’이라고 하는데, 중생들의 고통과 불행이 있는 모든 곳에는 부처님이 상주하여 계시면서 그들을 정법으로 교화하신다는 의미다. 송광사 삼존불상은 한국의 소조상 가운데 가장 장대(565cm)하며, 원만한 상호와 부드러운 법의 자락 등이 조각되어 있어 조선시대에 제작된 소조불상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본존인 석가여래불상 복장에서는 삼존불상이 조상된 내력을 소상히 기록한 불상조상기(1641)와 경전류, 후령통 등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불상조상기에는 병자호란(1636)이 일어나 청나라와 굴욕적인 화친을 맺은 뒤 심양(盛京)에 볼모로 가있던 소현세자(1612-1645)와 봉림대군(효종, 1619-1659) 등이 조속히 환국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외적과 싸우다 전사한 장졸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현세자가 잠시 한양으로 돌아와 머문 적이 있었는데 마침 송광사 대웅전의 삼존상을 개금하기 위해 금을 화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심양에서 둔전을 개발하여 얻은 많은 이익금을 선뜻 내놓아 송광사 삼존불상을 개금할 수 있었다.
영문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2020
This Buddhist triad depicts Sakyamuni (the Historical Buddha) in the center with Bhaisajyaguru (the Medicine Buddha) and Amitabha (the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to either side. The principal buddha and attendant buddhas, respectively, measure a massive 5.5 m and 5.2 m in height, making this clay triad one of the largest in Korea.
The triad was made in 1641 to wish for the longevity of the king and queen and also for a safe return of Crown Prince Sohyeon (1612-1645) and Prince Bongnim (later King Hyojong, b. 1619, r. 1649-1659)) who were taken as hostages to Qing China follow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It was made by Cheongheon and 17 other sculptor-monks with funds from the eminent monk Gakseong (1575-1660), who is known for leading the revival of Buddhism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is thus considered a masterpiece that reflects the will to overcome a national crisis.
When the statues were repaired in 1993, 12 relics were discovered inside. They include records about the creation of the statues, containers of votive objects, mirrors, and golden bottles. Among them, the records about the statues’ creation and containers of votive objects were designated as a cultural heritage together with the triad.
2021
Enshrined in the Great Buddha Hall of Songgwangsa are the seated Buddha triad, which were carved by 17 sculptors, including the artisan monks Cheongheon and Beomnyeong, from 1638 to 1641 using clay as the primary material.
Sakyamuni Buddha is in the center with Bhaishajyaguru, the medicine Buddha of the Eastern World, on his left and Amitabha Buddha, who is of the Western Pure Land, on his right. The triad Buddhas enshrined in this way, called the Buddhas of the Three Worlds, signify the presence of the Buddha in all the places where there exist human suffering and unhappiness from which the Buddha will liberate humanity by order and rule. The Triad Buddhas are the biggest (5.65 m) among all the clay Buddha statues in Korea. Moreover, carved with serene faces and the flowing trails of a Buddhist priest’s robe, they can be called the representative clay statues of pre-modern Korea.
Various items were discovered hidden inside the Buddha statue in the center, including a detailed record of the carving history of the three Buddha statues dating to 1641 and relics such as Buddhist scriptures and three containers of votive objects. The detailed record includes content about the Manchurian invasion (1637)⑦, which led to the humiliating peace treaty with the Qing dynasty. Crown prince Sohyeon (1612-1645), who was in Shenyang as a hostage, and Prince Bongnim (King Hyojong, 1619-1659) returned to their home country as soon as possible. The statue’s composition record contains the prayers for happiness in the other world for the officers and men who perished fighting the Japanese during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he Manchurian invasion. Once, Crown prince Sohyeon returned for a moment and stayed at his home in Seoul. At that time he heard a rumor that Songgwangsa was seeking donations of gold to re-paint the triad Buddha in the Great Buddha Hall. As a result, he ordered the military garrison in Shenyang to cultivate a farm, the profits of which were given to Songgwangsa, allowing it to re-paint the triad Buddha statues in gold.
영문 해설 내용
2020
이 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여래상과 양쪽 협시불상의 높이는 각각 5.5m, 5.2m이며, 한국에 남아있는 흙으로 빚은 삼존불상 중 큰 편에 속한다.
이 삼불좌상은 1641년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각성(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 등 17명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한 역작으로 평가된다.
1993년 불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12종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불상조성기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중 불상조성기와 후령통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자료
- 문화재대관_보물_불교조각 2, 문화재청, 2017. → 불상관련 기본 정보
- 디지털완주문화대전 http://wanju.grandculture.net/wanju/toc/GC07000381 → 이미지출처, 수인 구체적으로 설명.
- (이야기가 있는 조선시대 불상) ⑧ 완주 송광사 석가여래삼불상, 불교신문, 2017.5.10. 기사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843 → 조각승 및 벽암각성 관련 정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