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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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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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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곳 송광사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있다. 각각의 부처가 삼세(三世, 전세‧현세‧내세)를 상징하는 이 삼세불은 모두 조선 인조 19년(1641)에 흙으로 빚었다. 법당 안에 있는 좌불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며 불상 각 부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 후기 불상 우수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불상은 석가여래의 화현이라 여겨지던 진묵(眞黙) 스님이 점안(點眼)한 것이라고 한다. 불상 복장에서는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두 왕세자의 무사 귀국을 비는 발원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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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삼존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했으며 석가여래는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었고() 우리나라 삼존불상 큰 편에 든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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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불상 안에 들어있던 복장유물 12종 가운데 불상조성기 유물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은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초고====
 
대웅전에 모셔진 이 삼존상은 1641년 조성한 것이다.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빠른 귀국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17세기에 이루어진 다수의 대형 불상 조성 과정에 참여했던 청헌을 포함해 17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였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자로 등장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사불,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을 배치했다. 이 삼존상은 석가불이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은 우리나라 삼존불상 중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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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상에서 나온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인조 19년(1641) 6월 29일에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시주하고, 청헌(淸憲) 등 17인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손가락을 맞대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양쪽의 협시불인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모두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손 모양을 하고 있어 좌우 협시불의 팔 모양을 대칭으로 나타내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다르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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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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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불상과 함께 1993년 발견된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 조성기를 통해 불상의 제작 연대 및 조성 주체 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후령통 안에서 다섯 개의 거울과 보병, 수정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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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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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여래상과 양쪽 협시불상의 높이는 각각 5.5m, 5.2m이며, 한국에 남아있는 흙으로 빚은 삼존불상 중 큰 편에 속한다.  
  
*송광사 석가여래삼불상을 조성한 수조각승은 청헌(1626~1643)스님이다. 그는 1626년 법주사 비로자나삼불상 조성에 조각승 현진과 함께 2위로 참여한 바 있으며, 승일 및 법령과 함께 일군의 조각승을 이끌고 있었다. 17세기 대형의 소조불상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으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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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중 불상조성기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연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당시의 극심한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난극복의 의지와 역사의식의 반영과 함께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설명)
 
*서방 극락세계 교주인 아미타불, 중방 사바세계 영산교주인 석가불, 그리고 동방 유리광세계교주인 약사불, 이렇게 서방, 중방, 동방이라는 공간 구분에 따른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배치는 임진왜란 후인 17세기에 사찰을 재건하면서 전국적으로 가장 유행했던 형식이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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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상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1641년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각성(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 등 17명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전쟁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사불,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을 배치한 삼불좌상이다. 석가불이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은 우리나라 삼존불상 중 가장 크다.
 
 
 
이 삼불좌상은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빠른 귀국을 기원하기 위해 1641년에 조성한 것이다. 청헌(淸憲)을 포함해 17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였으며,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였다.
 
 
 
1993년에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후령통 3점이 보물로 함께 지정되어 있다. 불상 조성기를 통해 불상의 제작 연대 및 조성 주체 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후령통 안에서 다섯 개의 거울과 보병, 수정이 발견되었다.
 
 
 
====자문의견====
 
#분야별 자문위원1
 
#*아래 두 문단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
 
#* 복장유물 중 포함되어 있는 불상조성기에는 이 삼불좌상의 조성 이유와 연대가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이 불상은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빠른 귀국을 기원하기 위하여 1641년에 제작된 것이다.
 
#*(내용 추가) 특히 조성기에는 명나라와 청나라의 연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불상의 조성은 이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후기 양난 이후 불교의 중흥과 대형 불상의 조성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 수 있는 문장이 필요함.)
 
#*이 불상에 반영된 조각승 청헌 등의 조각 양식과 소조불로서의 특징 등을 기술할 필요가 있음.)
 
#분야별 자문위원2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대형 소조의 삼불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약사여래의 왼손에는 작은 약함을 쥐고 있어 도상적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중하면서도 원만한 얼굴, 흙의 특징이 잘 드러난 나는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옷주름 등의 표현이 돋보이며 신체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석가여래상에서 확인된 조성기에 의하면, 1614년 6월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히 무사귀환할 수 있도록 기원을 담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淸憲) 등 17명의 조각승이 참여해 조성한 상이다.
 
#*1993년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은 불상과 별도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상은 제작연대와 조성자가 확실하며, 당시의 국난극복의 의지와 역사의식이 반영된 귀중한 작품이다.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우리나라 삼존불상→ 우리나라 삼세불상
 
 
 
====2차 수정====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삼불좌상이다. 석가여래는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은 우리나라 삼존불상 중 가장 크다.
 
 
 
1993년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이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이 삼불좌상은 1641년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淸憲) 등 17명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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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보물]]
 
[[분류:보물]]
 
[[분류:불상]]
 
[[분류: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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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0월 23일 (금) 02:41 판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대표명칭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영문명칭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한자 完州 松廣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藏遺物
주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송광사 (대흥리)
지정번호 보물 제1274호
지정일 1997년 8월 8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소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괄 (불상 3구, 복장물 2종 6점)
웹사이트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 삼존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했으며 석가여래는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었고(은) 우리나라 삼존불상 중 큰 편에 든다.

1993년 불상 안에 들어있던 복장유물 12종 가운데 불상조성기 유물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은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에서 나온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인조 19년(1641) 6월 29일에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淸憲) 등 17인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문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영문 해설 내용

이 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여래상과 양쪽 협시불상의 높이는 각각 5.5m, 5.2m이며, 한국에 남아있는 흙으로 빚은 삼존불상 중 큰 편에 속한다.

1993년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중 불상조성기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1641년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각성(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 등 17명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전쟁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