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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인종대왕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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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인종대왕 태실
영천 인종대왕 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천 인종대왕 태실
한자 永川 仁宗大王 胎室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 24
지정번호 보물
지정일 2022년 8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소유자 영천시
관리자 영천시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기(태실1, 비1)
웹사이트 영천 인종대왕 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태실(胎室)은 조선시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반이나 탯줄과 같은 태를 보관하는 곳이다. 이러한 태실은 왕실의 후손들이 태어날 때마다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태실은 조선 제12대 국왕 인종(仁宗)의 태를 보관하던 곳으로, 중종 16년(1521)에 처음 조성하였다. 명종 원년(1546)에 인종이 승하한 후 가봉(加封)*하였으며, 숙종 6년(1680) 보수하였다.

1928년 일제가 전국에 산재한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 곳에 봉안된 태항아리와 각종 유물들을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겼으며, 1999년 그 동안 방치되었던 태실 유적을 발굴조사하여 2007년 복원하였다.

태실의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각종 석조물의 장식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조성 연대가 분명하여 태실의 조성 양식과 석조물의 조각 기법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가봉: 태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태실을 석물로 단장하는 것. 인종은 재위기간이 1년도 안되어 승하하였으므로 명종 때에 가봉 의식을 행함


영문

A placenta chamber is where a nested jar contain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ere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 newborn baby’s placenta was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and preserving it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Because this was especially important to the royal family, they took great effort to find the most auspicious place and time to build a placenta chamber. Commemorative steles were also erected in front of such placenta chambers. When the owner of the placenta became a king, additional stone sculptures were installed around the chamber.

영문 해설 내용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한 태항아리를 모시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택해 태를 봉안하였으며, 태실 앞에는 이를 기념하는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주인이 왕이 되면 태실 주변의 석물을 새로 만들었다.

이 태실은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1515-1545, 재위 1544-1545)의 태실이다. 1521년 처음 조성하고, 1546년 석물을 세웠으며, 1680년에 보수하였다. 태실의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각종 석조물의 장식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조성 연대가 분명하여 태실의 조성 양식과 석조물의 조각 기법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을 파괴하고, 태항아리를 고양 서삼릉 경내로 옮겨 안장하였다. 인종의 태항아리도 이때 옮겨졌고 태실은 방치되었는데, 1999년 발굴조사를 거친 뒤 2007년에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