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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영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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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영훈정
영주 영훈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주 영훈정
한자 榮州 迎薰亭
주소 경북 영주시 광복로 65 (영주동)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4호
지정일 2002년 2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棟)
웹사이트 영주 영훈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누정(樓亭)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 형식의 집을 말하며,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 등을 행하던 공간이다.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 · 정(亭) · 재(齋) · 암(庵) · 대(臺) 등의 명칭이 붙는다.

영훈정은 세조 14년(1468) 군수 정종소(鄭從韶)가 사신을 마중하고 배웅하기 위할 목적으로 세웠으며, 처음에는 남정자(南亭子)로 불렸다. 이후 중간에 폐지되었다가 인조 22년(1644)에 신속(申洬)이 다시 세우고 퇴계 이황이 쓴 「영훈정」 이라는 현판을 새겨서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현재 위치로 옮겼는데 시의회 서쪽 영주초등학교와 인접한 곳에 남향을 하고 있다.

건물의 형태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중층으로 겹처마에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방이 개방되어 있고 마루 가장자리에는 난간(欄干)*을 설치하였으며, 오른쪽 면 뒤 칸에 중층에 오를 수 있는 가파른 사다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키고 연등천장*으로 꾸몄으며 비교적 건실한 목재를 사용하여 당시의 투박한 치목수법이 돋보인다.

조선 후기 보편화되었던 각 가문의 정자와는 달리 관청용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방관이 세운 점이 특이하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난간 : 층계, 다리, 마라 따위의 가장자리에 일정한 높이로 막아 세워 놓은 구조물
  • 연등천장(椽燈天障) : 별도로 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만든 천장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영훈정은 군수로 부임했던 정종소가 사신 맞이를 위해 1468년에 세운 정자이다.

처음에는 ‘남정자’로 불렸으며, 중간에 폐지되었던 것을 1644년에 신속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사방이 개방된 마루의 가장자리에는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오른편에 위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 계단을 설치하였다.

지금 걸려 있는 현판은 이황의 글씨를 베껴서 새긴 것이라고 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