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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룡(1539~1601) 가문의 종택이다. | 양진당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룡(1539~1601) 가문의 종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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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이어져 있고, 사랑채 뒤편에 사당이 있다. 사랑채는 문중의 제사가 있을 때 제사 공간으로 사용한다. |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이어져 있고, 사랑채 뒤편에 사당이 있다. 사랑채는 문중의 제사가 있을 때 제사 공간으로 사용한다. |
2020년 2월 20일 (목) 13:56 판
안동 하회 양진당 Yangjindang House in Hahoe,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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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하회 양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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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Yangjindang House in Hahoe, Andong |
한자 | 安東 河回 養眞堂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4 |
지정번호 | 보물 제306호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하회 양진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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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집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풍산에 살던 류종혜 柳從惠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기에 유서가 깊다. 15세기 무렵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대종택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문중의 모임을 이 곳 사랑채에서 가진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풍산 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 柳泳 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입암고택 立巖古宅 ’은 류운룡의 아버지인 류중영 柳仲郢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수정 국문
양진당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룡(1539~1601) 가문의 종택이다.
이 곳은 류운룡의 선조 류종혜가 14세기 말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터를 잡은 곳이라고 하며, 집의 건물은 류운용의 아버지 류중영(1515~1573)의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어 고쳐지었고, 여러 대에 걸쳐 다시 지은 흔적을 안고 있다.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이어져 있고, 사랑채 뒤편에 사당이 있다. 사랑채는 문중의 제사가 있을 때 제사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 집의 이름인 ‘양진당’은 류운룡의 후손이자 최초로 풍산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사랑채 앞에는 ‘입암고택’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 이름은 류운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양진당의 맞은편에는 류운룡의 동생인 류성룡(1542~1607) 가문의 종택인 충효당이 있다.
- 6세: 류종혜
- 12세: 류중영(1515-1573)
- 13세: 류운룡(1539-1601)
- 류영(1687-1761) - 류운룡의 6대손
영문
Yangjindang is the head house of the descendants of Ryu Un-ryong (1539-1601), an esteemed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It is one of the two most well-known properties in the village - together with Chunghyodang, the head house of the descendants of Ryu Un-ryong's older brother, Ryu Seong-ryong (1542-1607).
This house was built by Ryu Un-ryong's father, Ryu Jung-yeong (1515-1573, pen name: Ibam), who was the 6th-generation descendant of the first member of the Pungsan Ryu Clan to move to this village, namely Ryu Jong-hye. The building was was destroyed by fir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1598 and then repaired. It underwent several more repairs over the years.
The house complex consists of a servant’s quarters,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There are also two ancestral shrines behind the house - one to honor Ryu Un-ryong and one to honor his father. The men’s quarters is used as a space for performing ancestral rituals.
The name Yangjindang comes from the pen name of Ryu Yeong (1687-1761), a descendant of Ryu Un-ryeong, who was the first to compile the genealogical records of the Punsan Ryu clan. The house is also known by the name "Ibamgotaek," meaning the "old house of Ryu Jung-yeong," and a plaque with this name hangs at the front of the men's quarters.
영문 해설 내용
참고
- "안동 하회 양진당 정밀실측 배치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