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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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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Geumgyejaesa Ritual House of the Pungsan Ryu Clan, Andong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영문명칭 Geumgyejaesa Ritual House of the Pungsan Ryu Clan, Andong
한자 安東 豊山柳氏 金溪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권태사길 116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88호
지정일 2016년 7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
수량/면적 건물 6동(290.87㎡), 토지 1,729㎡
웹사이트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2017)

풍산부원군(豊山府院君) 류중영(柳仲郢)의 묘제(墓祭)를 위한 재사이다. 그는 겸암(謙庵) 류운용(柳雲龍)과 서애(西崖) 류성룡(柳成龍)의 부(父)로 조선 중종(中宗) 때 문신으로 경연관(経筵官)이 되어 활약하였다. 본채는 숭실재․영모루와 부속건물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영모루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다락집이다. 누의 아래에는 벽체를 설치하여 수납공간을 마련하였다. 숭실재는 영모루 높이만큼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세웠다. 봉정사(鳳停寺)의 건물들과 그 분위기가 비슷하며 정면 6칸 중 4칸은 원래의 구조이고 왼쪽의 2칸은 나중에 달아낸 것이다.

숭실재는 원래 능효사(陵孝寺)의 한 전각이었는데, 풍산류씨 문중에서 인수하여 1558년 중수하고, 1622년 보수하여 재사로 사용하고 있다.

수정 국문(2022)

초고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문신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의 묘를 돌보고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는 풍산류씨 가문의 재사이다.

류중영은 선정(善政)으로 칭송받았던 류운룡(柳雲龍, 1539~1601)과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잘 이끌었던 류성룡(柳成龍, 1542~1607) 형제의 아버지이다.

재사는 2층 누각으로 지어진 영모루와 소루, 숭실재와 동부속채, 대문간채, 동재 건물이 전체적으로 튼 ‘ㅁ’자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동재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서로 연결되며, 류중영의 묘소 방향인 남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숭실재는 재사의 중심 건물로, 1987년 보수공사 때 조선 영조 12년(1736)에 작성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르면, 풍산류씨 문중에서 1560년 능효사(陵孝寺)라는 절의 건물을 인수한 이후, 1558년의 중수와 1622년의 보수를 거쳐 가문의 재사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벽체 구성이나 창호의 형태, 공포(栱包) 양식 등에 17세기 이전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재사 건축의 변천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내의 다른 건물들은 18세기 초반부터 점차 지어졌으며, 정면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모루는 1706년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한다. 두 누각은 모두 아래층은 전면에 나무판자로 벽을 세웠고, 위층은 마루를 깔고 안마당 쪽을 난간으로 처리하였다.

풍산류씨 문중은 유교적 제례 관습을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문중 내부적으로 족회소를 만들고 문서를 작성해 조상의 묘를 관리하고 숭배하는 일련의 과정을 후손들도 그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부계친족 뿐만 아니라 모계의 친족성원에게도 제사를 올리는 외손봉사의 관습도 그대로 전승하고 있다. 금계재사는 문중의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수행되도록 하는 중심공간으로서 유교 이념의 확립에 따른 조상 숭배 의식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재사가 위치한 안동 서후면 성곡리는 안동권씨 능동재사, 권태사 신도비, 권태사 권형 묘사 등 재사와 묘소가 모여 있어 ‘능골’로 불린다.
  • 숭실재는 건물에서 지붕의 하중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공포(栱包)가 처마를 받친 기둥 위에만 간결하게 얹어져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졌다. 기둥 사이를 건너지르며 기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인방(引防)을 숨긴 벽체 구성을 보여주며, 창호는 창틀 중앙에 기둥을 세운 영쌍창을 달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임진왜란 이전 시기의 건축에서 채택하는 것들로,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 숭실재는 건너편에 있는 영모루 높이만큼 쌓은 석축 위에 세워졌다. 부엌을 기준으로 동편은 원래의 건물이고, 서편의 부속채는 후대에 증축한 것이다. 동편 본채는 칸을 나눈 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면에는 난간을 단 좁을 툇마루를, 배면에는 전면보다 넓은 툇마루를 덧달았다.

1차 수정

영문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and maintenance of the tomb of Ryu Jung-yeong (1515-1573), a civil official and royal lecturer during the reign of King Jungjong (r. 1506-1544) of the Joseon Dynasty. He was the father of Ryu Un-ryong (1539-1601) and Ryu Seong-ryong (1542-1607), renowned scholars and civil officials of the Joseon period.

The scale of this ritual house complex is unusually large, consisting of a main hall named Sungsiljae, two pavilions, one of which is named Yeongmoru, and three ancillary buildings. Yeongmoru, a two-story pavilion standing at the front of the complex, features walls on the lower level to accommodate greater storage, which is uncommon for pavilions. Sungsiljae Hall, built on an elevated platform, was originally located in a Buddhist temple called Neunghyosa. It was relocated by the Pungsan Ryu Clan to be repurposed as a ritual house. It was reconstructed in 1558 and underwent repairs in 1622.

참고자료

  • 2016년 제3차 민속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사찰건물이 재실로 사용된 것은 1558년 이전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모습이 남아 있다. 따라서 많지 않은 임진왜란 이전건물이라고 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영모루는 임진왜란 이후인 1706년에 신축된 것이지만 부재의 쓰임, 가공의 기법, 령쌍창의 사용 등 당시의 기법이 잘 살아있어서 건축기술사적인 가치가 있다. / 풍산류씨는 선대의 묘제만이 아닌 평창군 권옹(權雍)과 권옹의 장인 배소(裵素)까지 외손봉사와 외외손봉사로 시제를 올리고 있음. 또한 서애 류성룡의 장인 역시 외손봉사로 그의 후손들이 해마다 시제를 올리고 있어 안동 지역의 특색있는 풍습과 민속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 / 숭실재의 창건연대는 확인이 어려우나 과거 재실 이전에 사찰관련 건물이었던 것을 풍산류씨 문중에서 인수하여 재사로 사용하였다 나타나고 있음. 숭실재는 초기에 주사와 강당의 기능을 겸하여 사용하였고, 문중의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강당의 기능을 위하여 영모루를 지은 것으로 판단됨. 이러한 사례는 재실의 초기적 성격과 독창적인 배치형태를 보여주고 있음 / 숭실재는 재사 이전에 사찰 관련 건물이었던 만큼 금계재사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고식의 건축기법인 후퇴가 있는 평면양식과 창 얼굴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음. 또한 안동문화권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1출목 이익공의 공포와 난간의 형태는 건축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 할 수 있음.
  • 안동 숭실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37 -> 천등산(天燈山)의 봉정사(鳳停寺)로 가는 길목인 능동 골짜기 초입은 마을이며, 그 안쪽에 권태사 신도비가 있고, 그 위쪽에 안동권씨 능동재사(安東權氏陵洞齋舍)가 있으며 가장 위쪽에 안동 숭실재가 자리하고 있다. 재사가 남동쪽으로 방향을 둔 것은 류중영의 묘소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안동 숭실재는 원래 능효사의 한 전각이었는데 풍산류씨 문중에서 재사로 인수하여 1558년에 중수하고, 1622년에 보수하였다. 절집을 개수한 점에서 안동 숭실재는 남흥재사(南興齋舍)와 성격이 같다. 원래의 건물에 달아매는 방식으로 증축을 하였다. 전면 누다락은 두 채를 서로 잇는 방식으로 증축되었다. 후면의 재사 건물은 부엌을 사이에 두고 동편은 원래의 건물이고, 서편은 새로 달아맨 건물이다.
  • 중요민속문화재 지정(제288호) -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http://www.k-heritage.tv/brd/board/378/L/CATEGORY/659/menu/1459?brdType=R&bbIdx=12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