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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재사는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 888~?)의 묘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재실로, 조선 순조 6년(1806)에 처음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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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호족이었다.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 918~943 재위)과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이 고창에서 전투를 벌이자, 김선평(金宣平, 901~?),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888~?)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고, 왕건은 세 사람을 공신으로 추대하며 태사(太師)의 벼슬을 하사하였다. 또한 고창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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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은 김선평이나 권행과 달리 묘가 어디 있는지도 확인이 어려웠었는데, 헌종 8년(1842)에 무덤들을 조사한 끝에 ‘장정(張貞)’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 지석(誌石) 조각을 찾아 묘를 증빙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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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재사는 철종 4년(1853)에 중건되었으며, 1966년 콘크리트 구조로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지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재사, 강당, 동서재, 관리사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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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701550000&pageNo=1_1_1_1 -> 성곡재사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 삼국 통일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삼태사의 한사람인 안동 장씨(安東張氏) 장길(張吉)의 제단을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집이다. 1806년에 건립하고 1853년에 중건하였으며,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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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43 -> 1806년(순조 6)에 건립되었고, 1853년(철종 4)에 중건하였다. 중건 당시의 “옛 터를 확장하고 제도를 크게 늘려 중앙 마루가 6칸, 동서 온돌방이 각각 2칸이고 좌우의 사랑채가 각각 4칸이고 주방과 창고가 6칸이었는데 합하면 24칸”이라는 기록과 현존 건물과는 잘 맞지 않아 그 후 다소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6년에 영휘루(永輝樓)를 건축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하였다. / 1541년(중종 36) 태사묘(太師廟)가 건립되어 삼태사를 향사하였지만 김선평, 권행과 달리 장정필은 묘조차 확인되지 않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재사가 성립된 후 1842년(헌종 8) 무덤 발굴을 통해 ‘장정(張貞)’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 지석(誌石) 조각을 찾아 묘를 증빙하였다고 한다. / 이곳처럼 큰 규모로 재사를 구성하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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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태사 장정필 단‧성곡재사 -안동장씨 시조-, 개미실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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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oaltlf/194312508 -> 실제 답사 사진 / 생몰년 입력되어 있으나 불확실한 정보로 판단.
  
  

2021년 6월 4일 (금) 01:14 판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한자 安東 張太師公 城谷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551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제155호
지정일 2005년 12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5동
웹사이트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신규. / 현지 안내판 내용 입력..?

수정 국문

초고

성곡재사는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 888~?)의 묘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재실로, 조선 순조 6년(1806)에 처음 건립되었다.

장정필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호족이었다.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 918~943 재위)과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이 고창에서 전투를 벌이자, 김선평(金宣平, 901~?),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888~?)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고, 왕건은 세 사람을 공신으로 추대하며 태사(太師)의 벼슬을 하사하였다. 또한 고창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

장정필은 김선평이나 권행과 달리 묘가 어디 있는지도 확인이 어려웠었는데, 헌종 8년(1842)에 무덤들을 조사한 끝에 ‘장정(張貞)’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 지석(誌石) 조각을 찾아 묘를 증빙하였다고 한다.

성곡재사는 철종 4년(1853)에 중건되었으며, 1966년 콘크리트 구조로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지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재사, 강당, 동서재, 관리사 건물이 있다.


1차 수정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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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701550000&pageNo=1_1_1_1 -> 성곡재사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 삼국 통일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삼태사의 한사람인 안동 장씨(安東張氏) 장길(張吉)의 제단을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집이다. 1806년에 건립하고 1853년에 중건하였으며,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건축하였다.
  •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43 -> 1806년(순조 6)에 건립되었고, 1853년(철종 4)에 중건하였다. 중건 당시의 “옛 터를 확장하고 제도를 크게 늘려 중앙 마루가 6칸, 동서 온돌방이 각각 2칸이고 좌우의 사랑채가 각각 4칸이고 주방과 창고가 6칸이었는데 합하면 24칸”이라는 기록과 현존 건물과는 잘 맞지 않아 그 후 다소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6년에 영휘루(永輝樓)를 건축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하였다. / 1541년(중종 36) 태사묘(太師廟)가 건립되어 삼태사를 향사하였지만 김선평, 권행과 달리 장정필은 묘조차 확인되지 않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재사가 성립된 후 1842년(헌종 8) 무덤 발굴을 통해 ‘장정(張貞)’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 지석(誌石) 조각을 찾아 묘를 증빙하였다고 한다. / 이곳처럼 큰 규모로 재사를 구성하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 (안동)태사 장정필 단‧성곡재사 -안동장씨 시조-, 개미실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roaltlf/194312508 -> 실제 답사 사진 / 생몰년 입력되어 있으나 불확실한 정보로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