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안동 관왕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6번째 줄: 6번째 줄:
 
|영문명칭=
 
|영문명칭=
 
|한자=安東 關王廟
 
|한자=安東 關王廟
|주소=경북 안동시 서악길 67-6 (태화동)
+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악길 67-6 (태화동)
 
|소장처=
 
|소장처=
 
|지정번호=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0호
 
|지정번호=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0호
32번째 줄: 32번째 줄:
 
===수정 국문===
 
===수정 국문===
 
====초고====
 
====초고====
관왕묘는 중국의 장수인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세워졌었다.
+
관왕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였던 관우(關羽, ?-219)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세워졌었다.
  
안동의 관왕묘는 조선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조선에 온 명나라 상수 설호신(薛虎臣)이 건립한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에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
안동의 관왕묘는 조선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조선에 온 명나라 상수 설호신(薛虎臣)이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안동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문묘와 사당이 마주하고 있는 것을 꺼려 17세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에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원래는 안동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문묘와 마주보고 있는 것을 꺼려 지금의 위치인 서악사(西岳寺) 동쪽에 이건했다고 한다. 이건 시기는 선조 39년(1606)이라는 설과 인조 14년(1636)이라는 설이 있다.  
+
경내에는 출입문인 광감루, 동서재, 사당의 입구인 묘우삼문, 사당인 무안왕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경내에는 출입문인 광감루, 동서재, 사당의 입구인 묘우삼문, 사당인 무안왕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무안왕묘 안에는 관우의 석상이 있고, 관우상 좌우에는 관우를 따랐던 부하들의 석상 4구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관우상은 수염이 난 얼굴에 무장의 의상으로 채색되어 있다.
 +
 
 +
사당 내 오른편에 세워져있는 비석은 이곳이 조성될 때 세워진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내용과 장수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석상이 있고, 관우상 좌우에는 관우를 따랐던 부하들의 석상 4구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관우상은 수염이 난 얼굴에 무장의 의상으로 채색되어 있다.  
+
이곳에서는 관우의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에 제사를 지낸다.
  
*우측에는 무장인 주창, 관평의 석상이 있고, 좌측에는 문사인 왕포, 조루의 석상이 있다.
+
*이건 시기는 선조 39년(1606)이라는 설과 인조 14년(1636)이라는 설이 있다.
*벽에는 삼고초려도와 적벽화전도가 그려져 있다. 사당 안에는 이곳과 관련한 기록을 새긴 무안왕비도 자리하고 있다.
+
*관우상 우측에는 무장인 주창, 관평의 석상이 있고, 좌측에는 문사인 왕포, 조루의 석상이 있다. 벽에는 삼고초려도와 적벽화전도가 그려져 있다.  
 
*광감루 입구에 있는 인왕석상과 무안왕묘 건물 내의 연화대좌석은 신라 때의 것으로, 조선시대에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인근에 있던 사찰 관련 석물을 가져다 쓴 흔적으로 추정된다.
 
*광감루 입구에 있는 인왕석상과 무안왕묘 건물 내의 연화대좌석은 신라 때의 것으로, 조선시대에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인근에 있던 사찰 관련 석물을 가져다 쓴 흔적으로 추정된다.
  
55번째 줄: 57번째 줄:
 
!style="width:200px"| ID ||style="width:100px"| Class ||style="width:200px"| Label || Description
 
!style="width:200px"| ID ||style="width:100px"| Class ||style="width:200px"| Label || Description
 
|-
 
|-
 
+
|관우||Actor||관우(關羽,_?_219)||
 +
|-
 +
|설호신||Actor||설호신(薛虎臣)||
 +
|-
 +
|안동_관왕묘||Place||안동_관왕묘
 +
|-
 +
|관왕묘||Concept||관왕묘||국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음.
 +
|-
 +
|안동향교||Place||안동향교||과거 위치 관련.
 +
|-
 +
|안동_관왕묘_관우석상||Object||안동_관왕묘_관우석상||국내 관왕묘 중 안동에만 석상이 있다고 함.
 +
|-
 +
|임진왜란||Event||임진왜란(1592)||설호신은 임진왜란떄 파병된 장수이다.
 +
|-
 +
|무안왕비||Object||무안왕비||무안왕묘 안에 있음.
 
|}
 
|}
  
62번째 줄: 78번째 줄:
 
!style="width:200px"| Source ||style="width:200px"| Target || style="width:200px"| Relation
 
!style="width:200px"| Source ||style="width:200px"| Target || style="width:200px"| Relation
 
|-
 
|-
 
+
|관우||안동_관왕묘||isEnshrinedIn
 +
|-
 +
|관우||관왕묘||isEnshrinedIn
 +
|-
 +
|관왕묘||안동_관왕묘||type
 +
|-
 +
|안동_관왕묘||안동_관왕묘_관우석상||hasPart
 +
|-
 +
|안동_관왕묘||무안왕비||hasPart
 +
|-
 +
|안동_관왕묘||안동향교||isRelatedTo
 +
|-
 +
|안동_관왕묘||설호신||founder
 +
|-
 +
|설호신||임진왜란||participatesIn
 
|}
 
|}
  
 
=='''참고자료'''==
 
=='''참고자료'''==
 
+
*안동 관왕묘,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561 →  1598(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정영도사(眞定營都事) 설호신(薛虎臣)이 세웠다. 당시에는 안동 성내동 목성산(木城山)에 있는 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향교의 문묘(文廟)와 마주보고 있는 것을 꺼려 1606(선조 39)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 해체한 뒤 복원한 것이다. 광감루(曠感樓)를 지나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조금 더 오르면 묘우삼문(廟宇三門)이 있다. 솟을대문에 ‘무안왕묘(武安王廟)’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무안왕묘가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 건물이다. 관우상은 화강암제의 좌상으로 총 높이 180㎝, 너비 70㎝이다. 관우상은 당시 안동부사의 현몽에 의해 만들어 봉안된 것이라 한다. 시위사장군 위상은 목조에 석회로 칠하였는데, 길이 180㎝이며 관우상의 전면에 2구씩 대립하고 있다. / 안동에서는 완전히 민간신앙화 되어 관우의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을 정제일(正祭日)로 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안동 관왕묘는 유일하게 석상(石像)의 관왕을 봉안한 곳이다.
 +
*안동 관왕묘(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0호)/관우의 사당이 우리나라에 있는 이유는?, 김희태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네이버 블로그 , 2020.9.25. https://blog.naver.com/bogirang/222099264756  → 비석이 사당 ‘안’에 있는 것 확인할 수 있음.
 +
*안동에는 관우의 사당인 관왕묘가 있다?, 마카다 안동(안동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2020.10.14.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2114906503 → 최초 관왕묘는 안동의 목선상, 안동향교의 맞은편에 있었다가 현 위치인 태화동으로 옮겨졌다.
  
  
72번째 줄: 104번째 줄:
 
[[분류:안동시 문화유산]]
 
[[분류:안동시 문화유산]]
 
[[분류:시도민속문화재]]
 
[[분류:시도민속문화재]]
[[분류:사우]]
+
[[분류:사당]]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2021년 4월 17일 (토) 11:57 판


안동 관왕묘
안동 관왕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관왕묘
한자 安東 關王廟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서악길 67-6 (태화동)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0호
지정일 1982년 2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
수량/면적 5동
웹사이트 안동 관왕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중국의 명장 관우(關羽)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왕묘를 지어서 서민에게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에 의해 관왕묘가 지어졌다. 조선 선조(宣祖) 31년(1598)에 서울 남대문 밖에 관왕묘를 지었고 같은 해에 성주, 강진, 안동, 남원에도 건립하였다. 안동의 관왕묘는 이 곳에 주둔한 명나라 진정영도사인 쉬후첸(薛虎臣)이 처음 건립하였다.

묘안에는 화강암으로 된 석상을 봉안하고 있다. 원래는 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문묘와 마주보고 있는 것을 꺼려하여 동왕 39년(1606)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1904년에 해체․복원하였다.

이 건물은 산의 경사가 급한 곳에 터를 잡았다. 누의 좌우에 동․서재(東․西齋)가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무안왕묘(武安王廟)’라는 편액을 단 문이 있으며 더 들어가면 담장에 싸인 정전이 있다.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건물 내부의 서쪽 벽에는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동쪽 벽에는 적벽화전도(赤壁畵全圖)가 그려져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관왕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였던 관우(關羽, ?-219)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세워졌었다.

안동의 관왕묘는 조선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조선에 온 명나라 상수 설호신(薛虎臣)이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안동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문묘와 사당이 마주하고 있는 것을 꺼려 17세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에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경내에는 출입문인 광감루, 동서재, 사당의 입구인 묘우삼문, 사당인 무안왕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무안왕묘 안에는 관우의 석상이 있고, 관우상 좌우에는 관우를 따랐던 부하들의 석상 4구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관우상은 수염이 난 얼굴에 무장의 의상으로 채색되어 있다.

사당 내 오른편에 세워져있는 비석은 이곳이 조성될 때 세워진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내용과 장수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는 관우의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에 제사를 지낸다.

  • 이건 시기는 선조 39년(1606)이라는 설과 인조 14년(1636)이라는 설이 있다.
  • 관우상 우측에는 무장인 주창, 관평의 석상이 있고, 좌측에는 문사인 왕포, 조루의 석상이 있다. 벽에는 삼고초려도와 적벽화전도가 그려져 있다.
  • 광감루 입구에 있는 인왕석상과 무안왕묘 건물 내의 연화대좌석은 신라 때의 것으로, 조선시대에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인근에 있던 사찰 관련 석물을 가져다 쓴 흔적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관우 Actor 관우(關羽,_?_219)
설호신 Actor 설호신(薛虎臣)
안동_관왕묘 Place 안동_관왕묘
관왕묘 Concept 관왕묘 국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음.
안동향교 Place 안동향교 과거 위치 관련.
안동_관왕묘_관우석상 Object 안동_관왕묘_관우석상 국내 관왕묘 중 안동에만 석상이 있다고 함.
임진왜란 Event 임진왜란(1592) 설호신은 임진왜란떄 파병된 장수이다.
무안왕비 Object 무안왕비 무안왕묘 안에 있음.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관우 안동_관왕묘 isEnshrinedIn
관우 관왕묘 isEnshrinedIn
관왕묘 안동_관왕묘 type
안동_관왕묘 안동_관왕묘_관우석상 hasPart
안동_관왕묘 무안왕비 hasPart
안동_관왕묘 안동향교 isRelatedTo
안동_관왕묘 설호신 founder
설호신 임진왜란 participatesIn

참고자료

  • 안동 관왕묘,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561 → 1598(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정영도사(眞定營都事) 설호신(薛虎臣)이 세웠다. 당시에는 안동 성내동 목성산(木城山)에 있는 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향교의 문묘(文廟)와 마주보고 있는 것을 꺼려 1606(선조 39)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 해체한 뒤 복원한 것이다. 광감루(曠感樓)를 지나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조금 더 오르면 묘우삼문(廟宇三門)이 있다. 솟을대문에 ‘무안왕묘(武安王廟)’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무안왕묘가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 건물이다. 관우상은 화강암제의 좌상으로 총 높이 180㎝, 너비 70㎝이다. 관우상은 당시 안동부사의 현몽에 의해 만들어 봉안된 것이라 한다. 시위사장군 위상은 목조에 석회로 칠하였는데, 길이 180㎝이며 관우상의 전면에 2구씩 대립하고 있다. / 안동에서는 완전히 민간신앙화 되어 관우의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을 정제일(正祭日)로 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안동 관왕묘는 유일하게 석상(石像)의 관왕을 봉안한 곳이다.
  • 안동 관왕묘(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0호)/관우의 사당이 우리나라에 있는 이유는?, 김희태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네이버 블로그 , 2020.9.25. https://blog.naver.com/bogirang/222099264756 → 비석이 사당 ‘안’에 있는 것 확인할 수 있음.
  • 안동에는 관우의 사당인 관왕묘가 있다?, 마카다 안동(안동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2020.10.14.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2114906503 → 최초 관왕묘는 안동의 목선상, 안동향교의 맞은편에 있었다가 현 위치인 태화동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