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수원 화성 - 장안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수원화성}}
+
{{진행중}}
 
{{수원화성정보
 
{{수원화성정보
 
|사진=장안문.jpg
 
|사진=장안문.jpg

2019년 3월 27일 (수) 08:58 판


장안문 長安門
Janganmun Gate
"수원 화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Goto.png 수원 화성 안내판 목록으로 가기
수원 화성행궁 안내판 목록으로 가기


해설문

국문

화성의 북쪽 정문이다. 장안문이라는 이름은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원침(현륭원)을 바라보아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리는’ 뜻에서 ‘길이(長), 편안함(安)’을 상징한다고 정조 자신이 풀이했다. 문 앞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두고 좌우에는 적대를 세워 방비를 든든하게 했는데, 석축 위에 세운 문루는 화성 내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정면 기둥 간격이 5칸이고 측면은 2칸인데 문루에는 위장을 비롯해서 많은 군사들이 주변을 지켰다. 처마 밑에는 다포라고 하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재들을 가득 짜 올렸다. 다포식 건물은 18세기 이후 궁궐에서도 1백 년 동안 좀처럼 만들어 볼 기회가 없었다. 다포를 만들기 위해 강원도에서 승려 목수 굉흡이 화성에 와서 일했다. 지붕은 네 방향의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방식인데, 이런 지붕은 긴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시대에는 좀처럼 만들지 못하고 궁궐 정문이나 서울 남대문, 동대문 같은 곳에서만 했는데, 장안문도 우진각 지붕이었다.

문이 완성되자 정조는 해마다 이 문을 지나 현륭원을 찾았으며 뒤를 이은 순조, 헌종, 철종, 고종도 이 문을 지났다. 1800년 정조가 승하했을 때는 정조의 재궁(시신을 모신 관)이 이 문을 지나 무덤으로 향했다. 장안문 바깥은 대유평이라는 넓은 들판이 있어서 이곳에 화성을 지키는 군사들을 위한 농경지를 가꾸었다. 서울에 있는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시대 성문을 대표하는 문이다. 6.25 전쟁 중에 폭격을 당해 문루가 사라졌다가 1979년 화성 복원정화 사업으로 다시 세워졌다.

  • 연혁: 창건 1796년(정조20) / 재건 1979년(6.25전쟁으로 폭격)
  • 구조: 다포식, 겹처마 우진각지붕

영문

Janganmun is the north gate of Hwaseong Fortress. Its name “Jangan (長安)” means “perpetual peace.”

One of the four gates of Hwaseong Fortress, Janganmun was constructed in 1794. It consists of a stone arch, two-story wooden pavilion, and a semi-circular stone wall which helps defend the gate. The names of those involved in the construction are inscribed on the stone wall of the gate.

As the main thoroughfare of Hwaseong was along a north-south axis, the north and south gates played a comparatively more important role as the main entrance and exit of the fortress. Typically, the main gate of a traditional Korean fortress was the south gate. However, as King Jeongjo would first come upon the north gate when travelling to Hwaseong from the capital, Hwaseong Fortress's north gate is its main gate. When Jeongjo died in 1800, his coffin was escorted through this gate on its way to his tomb site to the south of the fortress.

The wooden pavilion of this gate was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nd was reconstructed in 1975. The gate is large in scale and has a splendid structure. It is even taller than Sungnyemun (National Treasure No. 1), the main gate of the Seoul City Wall.

영문 해설 내용

장안문은 화성의 북쪽 출입문이다. 장안(長安)은 '길이 편안함'을 뜻한다.

화성의 4대문 중 하나인 장안문은 1794년에 세워졌으며, 석조 홍예문, 중층 목조 누각, 석조 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옹성 안 성문 벽에는 이 문의 건축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화성의 주 통행로가 남북 방향으로 났기 때문에, 남문과 북문은 주 통행문으로서 동문과 서문에 비해 좀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성곽에서는 보통 남문이 정문으로 쓰였다. 그러나 정조가 화성에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북문을 지났기 때문에 화성에서는 북문이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했을 때는 정조의 재궁(시신을 모신 관)이 이 문을 지나 무덤으로 향했다.

장안문의 목조 누각은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었다가 1975년에 다시 세워졌다. 장안문은 규모가 크고 화려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국보 제1호)보다도 높이가 더 높다.

갤러리

VR 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