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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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치는 원래 꿩을 뜻하는데, 꿩이 몸을 잘 숨기고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화성에는 용도에 설치한 2개의 치를 포함하여 총 10개의 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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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치는 장안문 동쪽을 지키는 북동적대에 붙여서 세웠다. 이곳의 성벽은 북동적대에서 급하게 남쪽으로 꺾이기 때문에, 남쪽을 지키기 위해 치성을 덧붙인 것이다. 치의 규모는 화성의 전체 치성 중 가장 크며, 치 위에서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치첩도 설치했다.
  
  

2018년 12월 21일 (금) 13:57 판


해설문

국문

장안문 동쪽 북동적대에 붙여서 동쪽 방향을 바라보며 세웠다. 화성의 성벽은 북동적대 위치에 와서 급하게 남쪽으로 꺾이게 되는데, 북동적대가 북쪽 방향을 향하고 있으므로 남쪽을 지키기 위해 치성을 덧 붙여 설치했다. 이처럼 치성을 다른 시설에 덧붙여 설치한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주변이 평탄한 곳이기 때문에 성벽 높이를 경사진 곳보다 높게 5미터 이상으로 하고 치성 규모도 내민 길이를 7.7미터, 폭을 6.5미터로 해서 화성의 여덟 곳 치성 중에 가장 크게 잡았다. 안쪽에서는 북동적대와 북동치가 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서, 북동적대의 벽돌 담이 북동치를 약간 가로 막는 형상이다. 적대는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이므로 치성보다는 더 중요하게 취급한 셈이다. 치성 여장에는 타구를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전면 여장에 타구 둘을 냈다. 여장의 전면 폭이 넓은 이유도 있지만 이 주변의 방어를 중요하게 여긴 탓으로 보인다.

  • 연혁 - 1796년(정조20) 건립 / 1978년 복원
  • 규모 - 길이 7.73m, 폭 6.5m, 높이 5.3m
  • 구조 - 석조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치는 원래 꿩을 뜻하는데, 꿩이 몸을 잘 숨기고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화성에는 용도에 설치한 2개의 치를 포함하여 총 10개의 치가 있다.

북동치는 장안문 동쪽을 지키는 북동적대에 붙여서 세웠다. 이곳의 성벽은 북동적대에서 급하게 남쪽으로 꺾이기 때문에, 남쪽을 지키기 위해 치성을 덧붙인 것이다. 치의 규모는 화성의 전체 치성 중 가장 크며, 치 위에서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치첩도 설치했다.



장안문 동쪽 문을 지키는 대에 붙여서 세운 치이다. 이곳에서는 성벽이 직각에 가깝게 꺾이기 때문에 북쪽 방향으로 돌출한 대에 추가해서 동쪽 방향으로 돌출한 치를 설치했다. 치의 규모는 여덟 곳 중 가장 크다. 북쪽 정문을 지키는 중요한 위치이므로 치 위에 많은 군사들이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치첩(雉堞, battlement)도 가장 충실하게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