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북동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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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장안문 동쪽에 세운 적대이다. 중국의 군사서적에서 적대는 성벽 바깥쪽으로 길게 나오는 것이 좋으며, 높은 대를 이용해서 양편을 돌아보아 적을 협공하면 적이 곧바로 성벽 아래까지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정약용은 화성에 모두 아홉 군데 적대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장안문 좌우와 팔달문 좌우 네 곳이었다.

북동적대가 있는 곳은 성벽이 안쪽으로 크게 꺾이는 곳이다. 따라서 북동적대에서는 서쪽으로는 장안문을 보호해야 하고 전면으로는 적의 침입을 살피고 또 동쪽과 북쪽까지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지형 여건 때문에 북동적대 바로 동편에 붙여서 치성을 마련하여 동편과 북쪽 방어를 치성에서 맡도록 하였다. 적대는 밖에서 보면 아래 폭이 조금 넓고 위로 가면서 약간 좁아지는 모습이다. 아래 폭은 약 8미터이고 위는 6.5미터 정도 된다. 높이는 6.8미터이다. 따라서 적대 외형은 안정감이 있으면서 적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는 외관을 지녔다. 몸체 한 가운데는 현안이라고 하는 수직 방향의 깊은 홈이 세 군데 나있다. 현안은 성 밖의 상황을 살필 수 있고 공격도 가능하도록 한 시설이며 특히 성벽에 근접한 적의 동향을 살피는데 필요한 장치이다. 적대 안쪽은 성벽과 같은 높이로 대를 쌓고 대 위에 군사들이 여럿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장안문 동쪽에 문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대이다. 대는 아래쪽을 조금 넓게 만들고 위로 가면서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쌓았다. 대 위에는 여러 명의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유사시에는 성문에 접근하려는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성문에 이런 대를 둔 것은 조선왕조에서는 화성이 처음이었으며, 중국의 성곽 서적을 학습한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