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동북포루(舖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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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2월 21일 (금) 23:58 판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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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사이 성벽에 치성을 설치하고 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루를 세웠다. 치성의 길이나 폭은 다른 포루에 비해 짧고 좁다. 포루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면에서 바닥을 1.5미터 정도 높여 마루를 깔고 그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는 누각을 세웠다. 성 안쪽 남면에는 누로 오르는 계단을 벽돌로 쌓아 설치하고 출입문을 냈다. 이 포루의 특징은 여장과 건물 사이를 벽돌로 채워서 군사들이 그 위에 올라서서 주변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이 부분을 화성성역의궤에서는 벽등(甓磴)[1]이라고 했다. 벽등은 다른 포루에는 없고 동북포루에만 설치되었다. 계단을 벽돌로 만든 것도 이 건물에서만 보인다. 지붕 꼭대기 양끝에는 용두 기와를 올렸는데 이것도 다른 포루에는 없다. 치성이 짧고 좁아서 지붕 서까래를 짧게 해서 빗물이 여장 안쪽에 흘러내리도록 하고 물 빠지는 시설을 냈다. 이 건물은 각건대(角巾臺)라는 별칭을 지녔다. 각건은 선비들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면서 쓰던 머리 덮개인데, 서까래 길이가 유독 짧아서 멀리서 이 건물을 바라보면 그 형상이 각건을 닮았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 연혁 - 1796년(정조20) 건립 / 1979년 누각 복원
  • 규모 - 치성 길이 6.12m, 폭 7.96m, 누각면적 18.45㎡
  • 구조 - 벽돌조 성벽 위 목조누각 홑처마 팔작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성벽을 돌출시켜서 치(雉)를 만들고 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집을 지은 것이다. 다섯 군데 포루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곳이다. 지붕 꼭대기에 용머리를 조각한 장식을 올리고 건물 측면에는 벽돌로 단을 쌓고 정면의 계단도 벽돌로 쌓았다. 건물 하부의 치의 폭과 길이가 좁아서 치 위에 세운 건물은 지붕의 서까래 길이가 유독 짧아졌다. 그 때문에 멀리서 보는 이 건물의 모습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쓰던 각건(角巾)이라는 모자와 비슷하게 보였다. 그 결과 이 건물은 각건대(角巾臺)라는 별명을 가졌다. 

주석

  1. 벽돌로 쌓은 계단. "벽등",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