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성산동 고분군 - 제53호분(옛 팔도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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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해설문'''== ===국문=== 제53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22.0×21.0m, 높이 5.7m이다. 조선총독...)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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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분은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에서 8개의 복숭아 씨앗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어 ‘팔도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고분은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에서 8개의 복숭아 씨앗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어 ‘팔도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제 48호분과 함께 조사되었는데, 담당자가 일본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무덤의 입구가 어느 방향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발굴 당시 무덤 입구 쪽으로 머리를 둔 인골도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인골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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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48호분과 함께 조사되었는데, 담당자가 일본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무덤의 입구가 어느 방향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발굴 당시 무덤 입구 쪽으로 머리를 둔 인골도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인골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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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6세기대 횡구식석실분의 구조형태를 잘 보여준다. (『가야자료총서 2권』 내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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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6일 (월) 14:56 판

해설문

국문

제53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22.0×21.0m, 높이 5.7m이다. 조선총독부에서 1920년 제48호분(대분)과 함께 발굴 조사하였으나 조사 담당자가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무덤 입구가 동쪽인지 서쪽인지조차 알 수 없다.

이 무덤은 ‘팔도분’(八桃墳)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에서 8개의 복숭아 씨앗이 담긴 뚜껑 있는 굽다리 사발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발굴 당시에는 무덤 입구 쪽으로 머리를 둔 인골도 발견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53호분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앞트기식 돌방무덤이다. 봉분의 크기는 지름 21~22m, 높이는 5.7m이며,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고분은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에서 8개의 복숭아 씨앗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어 ‘팔도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제48호분과 함께 조사되었는데, 담당자가 일본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무덤의 입구가 어느 방향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발굴 당시 무덤 입구 쪽으로 머리를 둔 인골도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인골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다.


  • 전형적인 6세기대 횡구식석실분의 구조형태를 잘 보여준다. (『가야자료총서 2권』 내용 인용)

갤러리


참고자료

<지자체 1자 제공 문안>
(발굴조사: 1920년 조선총독부 / 무덤크기: 지름 22.0×21.0m, 높이 5.7m / 출토유물: 뚜껑있는 굽다리 사발, 긴 목 겹아가리 굽다리 항아리, 복숭아 씨앗 등)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 속 토기에서 8개[八:여덟 팔]의 복숭아[桃:복숭아 도] 씨앗이 발견되어, ‘팔도분’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름이 제철인 복숭아가 묻혔던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여름에 묻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일제강점기 발굴 당시 무덤 입구 쪽으로 머리를 둔 인골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고, 조사담당자가 일본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보고서조차 발간되지 않아 무덤 입구 쪽이 동쪽인지 서쪽인지조차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