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서리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수원화성}} =='''해설문'''== ===국문=== 화성부 관청의 제반 사무를 보는 하급 관리들이 일하는 곳이다. 1789년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옮기...)
 
(영문 해설 내용)
11번째 줄: 11번째 줄: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
서리청은 관청의 제반 사무를 보는 하급관리인 서리가 근무하던 건물이다. 서리의 인원이 많고 해야 할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서리청은 행궁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서리청 마당의 남쪽에는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남쪽 담장에는 별주 쪽으로 나가는 별도의 출입문을 두어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1795년 정조 어머니의 회갑연 때에는 수라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

2018년 12월 23일 (일) 13:28 판


해설문

국문

화성부 관청의 제반 사무를 보는 하급 관리들이 일하는 곳이다. 1789년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동헌인 장남헌 동쪽에 지었다가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면서 그 건물은 비장청에 내주고 그 동편에 있던 금도청(禁盜廳) 즉 도적이나 그 밖에 법을 어긴 자들을 잡는 군사들이 머물던 건물을 고쳐서 서리청으로 삼았다. 건물은 22칸이나 되었다. 행궁 내 건물들이 대개 10칸 전후 규모인데 비해 면적이 넓은 편이고, 그만큼 화성부에는 많은 관리들이 업무를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서리청 마당 건너 남쪽에는 좌고(左庫)라고 부르는 문서 창고가 있고 남쪽 담장에는 별주 쪽으로 나가는 별도의 출입문이 나 있는 모습이다.

  • 연혁 - 1794년(정조18) 건립 / 2002년 복원
  • 구조 - 겹처마 익공식 맞배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리청은 관청의 제반 사무를 보는 하급관리인 서리가 근무하던 건물이다. 서리의 인원이 많고 해야 할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서리청은 행궁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서리청 마당의 남쪽에는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남쪽 담장에는 별주 쪽으로 나가는 별도의 출입문을 두어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1795년 정조 어머니의 회갑연 때에는 수라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수원시 관청의 제반 사무를 보는 하급 관리들이 일하는 곳이다. 서리들의 인원이 많고 해야 할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건물은 행궁 내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 또 마당 건너편에는 문서 창고를 비롯한 각종 창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남쪽 담장에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두어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바깥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는데, 분주한 서리들의 업무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