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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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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한자 尙州 沙西 全湜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상주기 외답동 산 24-1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9호
지정일 2009년 12월 28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는 조선 중기에 활약한 전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숙종 26년(1700)에 그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이다. 전식은 대사간, 예조참판, 대사헌등 많은 벼슬을 지냈다.

전식 신도비는 받침돌, 몸체, 머릿돌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머릿돌은 구름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용 무늬가 뚜렷하게 새겼고,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에는 거북의 등껍질처럼 육각형 모양을 전체에 섬세하게 새겼다. 몸체는 앞면과 뒷면의 아래쪽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앞면 윗단에는 ‘증좌의정행지중추충간공사서전선생신도비명’이라고 쓴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해서체로 새겼는데, 효종 10년(1659)에 조경이 글을 지었다.

숙종 26년(1700)에 신도비를 건립하면서 비문 7줄을 뒷면에 추가로 새겨 넣었다. 비에는 그의 족보, 관직, 그리고 광해군 원년(1608)에 북인파의 우두머리였던 정인홍을 조리 있게 공격한 일, 인조 3년(1625) 후금이 요동을 함락하고 있을 당시 바닷길로 중국 연경에 간 일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활동을 한 업적 등이 실려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 중기의 학자 전식(1563-1642)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전식은 정경세·이준과 함께 상주의 상산삼로(商山三老)로 칭송되는 인물이다.

비는 1700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조경(1589-1669)이 1659년에 지었고, 비석을 세울 당시 이봉징(1640-1705)이 추가로 지어 준 비문을 뒷면에 새겼다. 이진휴(1657-1710)가 글씨와 전액을 썼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구름과 용으로 장식된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 마을과 문중에서는 귀부 앞에서 뒤로 돌아서서, 이수 위에 돌이나 동전을 던져, 이수 위에 올라가게 되면 출사(出仕)하거나 원하는 자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근래에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을 지었다.(언제인지 확인 어려움.)
  • 전식의 무덤은 비각 뒤쪽 산에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