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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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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요지
Kiln Site in Yucheon-ri, Buan
부안 유천리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안 유천리 요지
영문명칭 Kiln Site in Yucheon-ri, Buan
한자 扶安 柳川里 窯址
주소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4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69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214,125㎡
웹사이트 부안 유천리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종합 안내판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노모리켄(野守健)이 인근에 있는 우동리 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 우연히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요지는 고려 시대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상감청자를 비롯하여 각종 청자를 만들었던 곳으로 전남 강진과 더불어 대표적인 요지로 손꼽히고 있다.

유천리 요지는 7개 구역으로 구분되는데 전 구역에 걸쳐 약 40여 개의 청자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1, 2구역은 가마터가 있으나, 대부분 밭이나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3구역은 가장 많은 청자 가마가 분포하고 있다. 4구역은 3구역과 인접해 있는데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5, 6구역은 소나무 숲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7구역에서는 아궁이와 그릇을 두는 곳인 번조실, 굴뚝부로 구성된 반지하식 가마 5기가 조사되었다.

2~5구역에서 조사된 청자는 비색청자와 국화, 연화, 모란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하는 무늬가 주로 새겨졌으며 이외에도 앵무새, 구름 속을 나는 학 등의 동물무늬와 상감기법*이 적용된 무늬의 도자기도 만들어졌다. 접시, 밥그릇, 잔 등의 일상용기뿐만 아니라 의자, 벽에 장식한 타일 등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3구역에서는 최고품질의 비색청자와 상감청자가 만들어졌다.

유천리 요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써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상감기법: 소재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그 부분에 다른 색깔의 재료를 메워 넣는 기법으로 상감 재료로는 돌, 조개껍데기 등이 있음

부안 유천리 요지 (1구역~4구역)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유천리 요지는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다양한 청자가 제작되었던 곳으로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1구역에는 1호, 2호, 32호 등 3개소의 요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 밭이나 논으로 경작되고 일부 민묘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완(찻잔), 접시 등의 일상용 그릇과 초번*편과 도지미*, 갑발* 등의 요도구, 그리고 무늬가 없거나 양각의 꽃무늬와 연꽃무늬 등이 새겨진 청자 등이 출토되었다.

2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5개소의 요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완(찻잔), 접시, 밥그릇, 잔, 뚜껑 등의 일상용 그릇뿐만 아니라 의자, 기와, 피리, 악기 등 특수한 용도의 청자까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3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12호 요지에서는 봉황이 새겨진 대형 합과 용이 새겨진 매병*, 벽을 장식하는 자판(타일), 향로, 완(찻잔)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80cm 이상 되는 큰 매병에 새겨진 파도 속 용의 모습은 고려 왕실의 위풍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채 청자*와 동화 청자*가 함께 출토된 곳이다.

4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접시, 대접, 발, 완(찻잔), 뚜껑, 매병 등의 일상용 그릇이 출토되었다. 도자기에는 무늬가 없거나 양각, 음각, 상감 등의 기법으로 모란, 국화, 회오리 무늬 등이 새겨졌다.

유천리 요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써 우리나라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초번: 도자기 등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낮은 온도의 열로 굽는 것을 말함
  • 도지미: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때 도자기를 놓는 받침
  • 갑발: 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큰 그릇
  • 매병: 매화 등 꽃가지를 꽂는 꽃병이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술, 물 등의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함
  • 동채 청자: 붉은 색을 내는 재료인 산화구리 안료를 그릇 전체에 입힌 청자
  • 동화 청자: 붉은 색을 내는 재료인 산화구리 안료로 무늬를 그린 청자

부안 유천리 요지 (5구역~7구역)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유천리 요지는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다양한 청자가 제작되었던 곳으로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5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 전반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접시, 발, 대접, 완(찻잔), 뚜껑 등의 일상용 그릇이 나왔는데, 그 중 15호 요지에서는 상·중·하의 다양한 품질의 청자가 출토되었다.

6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접시, 발, 대접, 완(찻잔), 뚜껑 등의 일상용 그릇과 도지미*, 갑발* 등의 요도구가 출토되었다. 도지미는 원통형, 원반형, 삼각각뿔형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규석 받침을 하고 있어 뛰어난 상급의 청자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는 무늬가 없는 무문이 주를 이루고 있고, 압출양각*과 음각의 시문 기법이 일부 확인되었다.

7구역에서는 무늬가 없는 무문, 음각, 상감 등 다양한 기법으로 새겨진 청자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형과 시문기법, 문양, 요도구류 등은 진서리 요지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상감청자의 출토비율이 진서리 요지에 비해 낮은 것으로 보아 가마의 운영시기는 고려청자가 절정에 이르는 13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천리 요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써 우리나라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도지미: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때 도자기를 놓는 받침
  • 갑발(匣鉢): 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큰 그릇
  • 압출양각(壓出陽刻): 흙으로 만들어 구운 문양 틀을 사용해 그릇에 문양을 찍어내는 기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종합 안내판

이곳은 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청자 등이 제작되었던 가마터이다.

1929년 일본인 노모리켄이 인근에 위치한 우동리 요지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1993년 실시된 정밀지표조사를 거쳐 7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일대에 42기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가장 많은 청자 가마가 분포하고 있는 곳은 3구역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의 건물지를 비롯해 봉황이나 용처럼 왕실의 권력을 상징하는 무늬로 장식된 최상급의 청자 조각들, ‘관(官)’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 등 고려 왕실과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또한 6구역에서는 연소실-소성실-배연부-유물 퇴적구로 이어지는 전체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청자 가마가 발견되었다.

7구역에는 2011년 개관한 부안청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건설에 앞서 실시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사된 반지하식 가마 5기 중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2기에 보호각을 씌워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1,2,4,5 구역에도 가마터와 청자 조각들이 확인되었지만, 현재 이곳들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 있는 가마터들에서는 국화, 연화, 모란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하는 무늬가 새겨진 접시·밥그릇·매병(꽃병)·술잔 등의 일상 용기를 비롯해 앵무새 등의 동물무늬를 새긴 도자기, 의자, 지붕에 올리는 기와, 벽을 장식하기 위한 타일 등 다양한 종류의 청자 조각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전라남도 강진과 더불어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부안에 청자 요지가 많은 이유를 설명할 것인지,..? -> 부안의 변산 일대는 조운이 발달되어 있었고, 땔감으로 쓸 나무도 풍부해 청자 가마를 세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부안 유천리 요지 (1구역~4구역)

부안 유천리 요지는 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청자 등이 제작되었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는 유적으로, 일대는 총 7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1구역에 3기, 2구역에 5기, 4구역에 9기의 가마터가 있는데, 현재 이곳 대부분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찻잔, 접시, 밥그릇, 잔, 뚜껑 등 일상용 그릇이 많이 출토되었고, 도자기를 구울 때 쓰는 받침 등의 도구들을 비롯해 의자, 기와, 악기 등 특수한 용도의 청자들도 발견되었다.

3구역에는 유천리 일대에서 가장 많은 12기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여려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가마 외에도 도자기 생산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4개소와 ‘관(官)·신동(申棟)’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 등이 확인되었으며, 고려 왕실에 공급하는 최상급의 자기를 생산했던 곳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3구역 내 12호 가마에서는 봉황이 새겨진 대형 합, 용이 새겨진 대형 꽃병, 벽을 장식하는 청자 타일, 향로, 등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유물들을 비롯해 고려상감백자, 붉은 색의 안료를 활용하여 제작되는 동채·동화 청자, 다양한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 등 고려 왕실과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는 많은 유물들이 함께 확인되었다.


  • 용과 봉황은 각각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 이곳에서는 산화구리 안료로 선홍빛을 표현한 동화·동채청자, 은은한 미색 바탕에 봉황이나 모란 · 국화 문양을 섬세하게 흑상감한 고려백자 등 부안만의 독특한 고려자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 3구역의 12호 가마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정밀조사가 실시되었고 이곳에서는 가마 1기를 비롯해 건물지 4동과 부속시설, 유물퇴적구 2곳이 확인되었다. 12호 가마는 아궁이 앞부분에 유약을 제조할 때 필요한 주성분인 소나무 재를 모으기 위한 공간으로 보이는 감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아궁이와 연결되는 소성실의 가마 온도가 순간적으로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구조로 보이는 불턱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생산지 중 한 곳인 강진의 가마 구조와 동일한 형태이다.

부안 유천리 요지 (5구역~7구역)

부안 유천리 요지는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다양한 청자가 제작되었던 가마터로, 총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5구역부터 7구역까지는 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다.

5구역과 6구역에는 각각 2기의 가마터가 있다. 5구역의 15호 요지에서는 최상품부터 하품까지 다양한 품질의 청자가 출토되었다.

6구역에는 2기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중 1기는 연소실-소성실-배연부-유물 퇴적구로 이어지는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특히 소성실과 유물 퇴적구 자리에서 초벌 단계의 청자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함께 확인된 규석 받침의 요도구 등의 유물들을 볼 때 이곳의 가마들은 상급의 청자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구역에는 고려청자의 제작이 절정에 이르렀던 13세기 중엽에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9기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무늬가 없는 것부터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것까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청자들이 출토되었다.

참고 자료

-> 기본 정보 확인

-> 확인되는 가마유적 개수 : 다른 자료에 가마터로 추정되지만 민가가 있어 확인이 어렵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참고할 필요 있을 듯.

-> 가마 운용 시기에 대한 언급 : 기존 국문에는 11세기~14세기로 넓게 잡혀있으나, 출토된 유물들을 기준으로 대부분 12세기에서 13세기로 편년하고 있으므로, 원고에서도 12-13세기로 비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함.

-> 3차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자기 가마, 건물지, 고급자기, 도범 조각, ‘관(官)·신동(申棟)’명이 새겨진 기와 등을 미루어 볼 때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왕실에 공납하는 최상급 관용(官用) 자기를 생산하였던 곳으로 판단된다.

-> 국내에서 조사된 고려 시대 청자가마에서 초벌 칸을 운용하던 사례는 강진 사당리 43호가 있으나, 초벌 칸과 연결된 유물 퇴적구에서 초벌 청자가 다량으로 조사된 점은 가마구조의 발전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