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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청자 등이 제작되었던 가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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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고려시대인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청자를 제작하던 가마터이다. 부안의 변산 지역은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부하였고, 조운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완성된 제품을 해로를 통해 신속하게 수도로 운송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929년 일본인 노모리켄이 인근에 위치한 우동리 요지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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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일본인 학자 노모리켄(Nomori Ken, 1887-1970)이 인근에 위치한 우동리 요지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7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42기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1993년 실시된 정밀지표조사를 거쳐 7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일대에 42기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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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청자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는 곳은 3구역으로, 최고 품질의 상감청자가 만들어지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의 건물지를 비롯해 봉황이나 용처럼 왕실의 권력을 상징하는 무늬로 장식된 최상급의 청자 조각들, ‘관(官)’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 등 고려 왕실과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6구역에서는 전체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청자 가마가 발견되었다. 7구역에는 반지하식 가마 5기가 발견되었으며, 이중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2기에 보호각을 씌워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가장 많은 청자 가마가 분포하고 있는 곳은 3구역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의 건물지를 비롯해 봉황이나 용처럼 왕실의 권력을 상징하는 무늬로 장식된 최상급의 청자 조각들, ‘관(官)’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 등 고려 왕실과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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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 구역은 현재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주로 국화, 연화, 모란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하는 무늬가 새겨졌으며, 앵무새와 학 등의 동물 무늬를 새긴 것도 있다. 접시, 밥그릇, 꽃병, 술잔 등의 일상 용기를 비롯해 의자, 기와, 벽을 장식하기 위한 타일 등 다양한 종류의 청자 조각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또한 6구역에서는 연소실-소성실-배연부-유물 퇴적구로 이어지는 전체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청자 가마가 발견되었다.
 
 
 
7구역에는 2011년 개관한 부안청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건설에 앞서 실시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사된 반지하식 가마 5기 중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2기에 보호각을 씌워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1,2,4,5 구역에도 가마터와 청자 조각들이 확인되었지만, 현재 이곳들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 있는 가마터들에서는 국화, 연화, 모란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하는 무늬가 새겨진 접시·밥그릇·매병(꽃병)·술잔 등의 일상 용기를 비롯해 앵무새 등의 동물무늬를 새긴 도자기, 의자, 지붕에 올리는 기와, 벽을 장식하기 위한 타일 등 다양한 종류의 청자 조각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전라남도 강진과 더불어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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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 청자 요지가 많은 이유를 설명할 것인지,..? -> 부안의 변산 일대는 조운이 발달되어 있었고, 땔감으로 쓸 나무도 풍부해 청자 가마를 세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2020년 7월 11일 (토) 07:11 판


부안 유천리 요지
Kiln Site in Yucheon-ri, Buan
부안 유천리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안 유천리 요지
영문명칭 Kiln Site in Yucheon-ri, Buan
한자 扶安 柳川里 窯址
주소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4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69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214,125㎡
웹사이트 부안 유천리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노모리켄(野守健)이 인근에 있는 우동리 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 우연히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요지는 고려 시대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상감청자를 비롯하여 각종 청자를 만들었던 곳으로 전남 강진과 더불어 대표적인 요지로 손꼽히고 있다.

유천리 요지는 7개 구역으로 구분되는데 전 구역에 걸쳐 약 40여 개의 청자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1, 2구역은 가마터가 있으나, 대부분 밭이나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3구역은 가장 많은 청자 가마가 분포하고 있다. 4구역은 3구역과 인접해 있는데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5, 6구역은 소나무 숲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7구역에서는 아궁이와 그릇을 두는 곳인 번조실, 굴뚝부로 구성된 반지하식 가마 5기가 조사되었다.

2~5구역에서 조사된 청자는 비색청자와 국화, 연화, 모란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하는 무늬가 주로 새겨졌으며 이외에도 앵무새, 구름 속을 나는 학 등의 동물무늬와 상감기법*이 적용된 무늬의 도자기도 만들어졌다. 접시, 밥그릇, 잔 등의 일상용기뿐만 아니라 의자, 벽에 장식한 타일 등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3구역에서는 최고품질의 비색청자와 상감청자가 만들어졌다.

유천리 요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써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상감기법: 소재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그 부분에 다른 색깔의 재료를 메워 넣는 기법으로 상감 재료로는 돌, 조개껍데기 등이 있음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시대인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청자를 제작하던 가마터이다. 부안의 변산 지역은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부하였고, 조운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완성된 제품을 해로를 통해 신속하게 수도로 운송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929년 일본인 학자 노모리켄(Nomori Ken, 1887-1970)이 인근에 위치한 우동리 요지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7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42기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가장 많은 청자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는 곳은 3구역으로, 최고 품질의 상감청자가 만들어지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의 건물지를 비롯해 봉황이나 용처럼 왕실의 권력을 상징하는 무늬로 장식된 최상급의 청자 조각들, ‘관(官)’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 등 고려 왕실과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6구역에서는 전체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청자 가마가 발견되었다. 7구역에는 반지하식 가마 5기가 발견되었으며, 이중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2기에 보호각을 씌워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1,2,4,5 구역은 현재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주로 국화, 연화, 모란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하는 무늬가 새겨졌으며, 앵무새와 학 등의 동물 무늬를 새긴 것도 있다. 접시, 밥그릇, 꽃병, 술잔 등의 일상 용기를 비롯해 의자, 기와, 벽을 장식하기 위한 타일 등 다양한 종류의 청자 조각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 가마 운용 시기에 대한 언급 : 기존 국문에는 11세기~14세기로 넓게 잡혀있으나, 출토된 유물들을 기준으로 대부분 12세기에서 13세기로 편년하고 있으므로, 원고에서도 12-13세기로 비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