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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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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Modern Korean-style House in Toero-ri, Miryang
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영문명칭 Modern Korean-style House in Toero-ri, Miryang
한자 密陽 退老里 近代 韓屋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2길 18-7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제152호
지정일 2005년 4월 15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주거숙박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4동, 1층, 연면적 217.52㎡
웹사이트 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근대 신교육 기관 화산의숙을 설립한 이익구의 차남 이병수(李炳壽)의 살림집으로 지어졌다. 안채와 사랑채는 1910년대에 들어섰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ㅡ’ 자형 안채, 서쪽에 ‘ㄱ’ 자형 사랑채, 안채 정면에 ‘ㅡ’ 자형 곳간채가 자리한다. 사랑채 뒤에는 사당이 있다. 이익구가 짓고 장남 이병희가 살던 ‘퇴로리 이씨 고가’와는 중문(中門)을 통해 앞뒤로 연결돼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 양반집의 건축 형식과 배치를 따르면서도 전후퇴*의 확장, 내부 수납공간* 확대 등에서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보인다. 기존 외관과 공간 구조를 보존하면서 부엌과 화장실을 개조함으로써 공간의 전환을 꾀하던 20세기 초 한옥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 준다.


  • 전후퇴(前後退): 집채의 앞뒤로 다른 기둥을 세워 만든 조그마한 칸살
  • 수납공간(受納空間): 물건을 넣어 두는 공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이익구(1838-1912)가 둘째 아들 이병수(1861-1930)를 분가시키면서 지어준 살림집이다. 정확한 건립연도는 알 수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는 1910년 무렵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익구는 1890년 퇴로리로 이주해 집을 짓고(밀양 퇴로리 이씨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정착한 후, 마을에 근대 교육 기관인 화산의숙을 세워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힘썼다.

이 집은 본래 총 7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노후한 건물들은 헐어 없앴고, 지금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사당, 대문채가 남아 있다. 각 공간들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협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조선 후기 양반 가옥의 배치를 유지하면서 지어졌으며, 안채 뒤편에 있는 협문을 통해 앞뒤로 나란히 자리한 이씨 고가의 청덕당과 서로 연결된다.

이곳은 건물 내부의 수납공간을 확대하고, 미닫이 유리창문과 알루미늄 새시와 같은 근대 재료를 활용하는 등 20세기 초 농촌에서 지어진 한옥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

  • 본래 남쪽에 대문채가 있었는데 이것은 낡아서 헐었고, 동쪽에 있던 중사랑채를 대문채로 쓰게 되었다.
  • 생활 방식의 변화에 따라 편의를 위해 부엌과 화장실 등 내부 공간을 개조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