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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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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사지
노산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노산사지
한자 蘆山祠址
주소 경기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산69-7번지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43호
지정일 1977년 10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기타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노산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노산사지는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노산사가 있던 자리로 1954년에 새롭게 지었다. 노산사는 이항로가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송시열을 존경하며 그들의 사상을 잇고자 초상화와 이름을 적은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 등을 밝힌 학문을 성리학이라 한다. 중국 송나라의 주희는 성리학을 학문으로 세운 인물이며, 송시열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다. 이항로는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이항로의 사상은 19세기 일본과 서양이 조선을 침략하던 시기에 이를 막고자 한 의병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항로가 죽은 후 후손들이 이항로의 초상화와 이름을 적은 위패를 함께 모셨다. 매년 9월 15일에 이항로의 높은 덕과 학식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 이항로(1792~1868)가 세운 사당이 있었던 자리이다.

이항로는 19세기 말 옛 것을 지키고 서양의 문화를 함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한 유학자이다. 그는 벼슬을 포기하고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항일 의병 운동을 이끌었던 최익현(1833-1907), 김평묵(1819~1891) 등이 그의 제자이다.

그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와 조선 중기 성리학자 송시열의 사상을 흠모해 그들의 학문을 잇고자 하였으며, 두 사람을 기리고자 노산사를 세우고 초상화와 위패를 모셨다.

이항로가 죽은 후에는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 이항로의 초상화와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사당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1954년에 다시 지어졌으며, 지금은 대문과 사당 건물을 중심으로 담장이 둘러져 있다.

이곳에서 매년 9월 15일에 이항로를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 이항로가 사당 세운 시점이나 배향된 시점 확인 어려움.
  • 1985년에 보수하였다. 인근에 ‘이항로 생가’가 있다.

참고 자료

-> 이항로가 태어난 집이 있었던 자리(경기도문화재총람 ; 도지정편 2, 경기도, 2010. 동일)라고 하는데, 해당 내용을 쓰면 근처에 있는 ‘생가’라는 명칭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