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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무계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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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무계리 지석묘
김해 무계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 무계리 지석묘
한자 金海 茂溪里 支石墓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동 366-3 및 367-2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51호
지정일 1996년 3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지석묘
수량/면적 1기(324)
웹사이트 김해 무계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해 무계리지석묘는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6.1m, 너비 2.9m, 두께 1.3m이다. 지석묘가 있는 마을 이름을 ‘넓을 광[廣]’에 ‘돌 석[石]’ 자를 써 ‘광석’이라고 하는데, 큰 덮개돌을 가진 이 지석묘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무계리지석묘는 현재까지 조사된 적이 없으나 1964년 11월에 북쪽으로 20m 지점에 있던 다른 지석묘가 발굴 조사되었다. 다른 지석묘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간 돌칼, 돌 화살촉, 청동 화살촉 파편, 대롱옥*, 토기의 파편 등이 있다. 무덤 주인의 머리가 동쪽으로 향해 있고, 그의 오른쪽에서 간 돌칼이 발견되었다. 간 돌칼이 의례 용품으로 쓰였다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후반인 기원전 3~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대롱옥: 원통 모양의 대롱과 같은 장신구.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무덤이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세계 고인돌의 40%에 달하는 4만~4만 5천기의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었다.

무계리 지석묘는 장유면 광석마을의 마을회관 인근 공터에 자리하고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6.1m, 너비 2.9m, 두께 1.3m이며, 마을의 이름도 이 고인돌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정식으로 조사가 되지 않았고, 하단부에 시멘트가 보강되어 있어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석묘에서 북쪽으로 20m 떨어진 곳에서 1962년에 발견된 다른 지석묘와 같은 시기에 동일한 구조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64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또 다른 지석묘에서는 돌칼과 돌 화살촉, 청동화살촉, 관옥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을 토대로 볼 때, 무계리의 지석묘들은 기원전 3~4세기 무렵에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 김해 무계리 지석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1510000&pageNo=1_1_1_1 -> 김해시 장유면 무계리 대청천의 북쪽 평지에 위치하고있다. 지석묘와 고목이 있는 부분은 별도의 석축을 쌓아 지석묘와 고목을 보호하고 있으며 아울러 부락민들의 휴게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부락에서는 이 지석묘를 광석이라 불렀다. (현황) 남방식 지석묘로 생각되나 상석하부가 메꾸어져 있어 정확한 구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지상에는 거대한 상석만 눌려 있는데 북쪽끝 부분만 약간 들려 있고 나머지 부분은 흙과 돌로서 메꾸어져 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6.1m, 폭 2.9m, 두께 1.1∼1.3m이며 장축은 남북향이다. 부근에서 1964년 11월에 조사된 무계리 지석묘와 동일한 구조를 가졌을 가능성이 많다. 유물은 전혀 없고 지석묘 하부구조의 파괴 여부도 파악할 수 없었다.
  • 『가야 탄생의 서막 김해의 고인돌 』, 대성동고분박물관, 2012. -> 고인돌의 아래에는 시멘트가 발려 구조를 알기 어렵지만, 옛날 사진으로 보면 받침돌이 있는 바둑판식이다. 1962년에 이 고인돌에서 20m 정도 떨어진 파괴된 고인돌에서 돌칼과 화살촉 8점, 청동화살촉 3점, 관옥 3점이 출토된 바 있다. 그 중에서 돌탈은 손잡이가 매우 강조죈 형태이고, 청동화살촉은 고인돌에서는 거의 출토 예가 없는 희귀한 예이다.
  • 무계리 지석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8924 -> 경상남도 기념물 제151호. 1962년 농부에 의해 냇돌로 벽을 쌓고 3매의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돌덧널이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덮개돌[上石]은 없어졌으나 원래 남방식 고인돌의 하부구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덧널은 동서장축이며, 크기는 2.3×1.2m정도이다. 돌덧널 내부의 동쪽 끝에서 파괴된 붉은간토기 1개체분, 돌화살촉 8개, 돌검 1점, 동촉 3점, 대롱옥[管玉] 3점이 출토되었다.
  • 김해 무계리 지석묘, 김해시 문화관광, https://www.gimhae.go.kr/00954/01200/03795.web?amode=view&comment=Y&idx=637-> 남방식 고인돌로서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지상에는 거대한 상석만 남아 있는데 북쪽 끝 부분만 약간 들려있고 나머지 부분은 흙과 돌로써 메워져 있다. 상석규모는 길이 6.1m, 폭 2.9m, 두께 1.1~1.3m이며, 장축은 남북향이다. 1964년 11월에 조사된 광석리 지석묘와 동일한 구조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