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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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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
한자 金海 龜山洞 磨崖如來坐像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산 2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지정일 1979년 12월 29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좌
웹사이트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마애여래좌상은 부처의 앉은 모습을 절벽의 바위 면이나 거대한 바위 면에 선으로 새기거나 돋을새김한 것이다.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으며 김해 운동장 뒤편, 속칭 물망골 미륵당이라는 산등성이에 자리한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석에 선으로 새긴 불상이다. 불보살이 앉는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여 앉아 있고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리고 왼손은 왼쪽 무릎에 대고 있다. 얼굴에는 눈, 코, 입 등이 얕게 새겨져 있고, 머리에는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상아 상투 모양이 된 것을 이르는 육계가 솟아 있다. 등 뒤로는 부처의 신성한 후광을 표현한 광배를 갖추고 있다.

구산동 마애여래좌상에는 다음의 설화가 얽혀 전해지고 있다. 고려 시대 매정 마을에서 태어난 무득이란 아이는 열세 살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사치스럽고 성격 고약한 새어머니를 위해 힘들게 일해야만 했다. 장대 스님이 무득을 물망골로 데려가 바위에 불상을 새기게 했으며, 무득이 새긴 불상을 보고 새어머니는 지난 과거를 뉘우치고 무득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후 무득은 스님이 되어 장대 스님이 하던 일을 이어갔다고 한다.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은 김해의 우수한 불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 결가부좌: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고 허리를 쭉 펴고 바르게 앉아 있는 자세.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큰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긴 이 마애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오른손은 손가락을 맞대 가슴 근처로 들어 올렸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해 무릎에 올렸다. 얕게 새겨진 이목구비는 희미하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확인할 수 있다. 연꽃 문양으로 장식한 받침대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의 머리와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신성한 빛을 표현한 광배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때 매정 마을에서 태어난 무득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무득은 13세에 돌림병으로 어머니를 잃었는데, 이후 못된 새어머니를 만나 힘들게 일을 해야 했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던 장대 스님은 힘들어하던 무득을 이곳으로 데려와 불상을 새기게 했다. 완성된 불상을 본 새어머니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무득에게 용서를 빌었고, 이후 무득은 스님이 되어 스님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