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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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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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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광양성황리삼층석탑.jpg
 
|사진=광양성황리삼층석탑.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600050000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600050000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광양성황리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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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영문명칭=
 
|영문명칭=
|한자=光陽城隍里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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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光陽 城隍里 三層石塔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 746번지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 746번지
 
|소장처=
 
|소장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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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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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후 머리 장식을 얹은 삼층 석탑이다. 탑의 몸체인 탑신석(塔身石)과 지붕인 옥개석(屋蓋石)이 층마다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을 새겨 넣었고, 옥개석 아래 처마에 해당하는 옥개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지붕, 처마, 기둥이 있는 기와집을 연상케 한다. 옥개석 윗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3층 지붕돌 위에는 구슬 모양 등을 한 장식물이 얹혀 있다. 탑 높이는 2.64m이고, 탑 아래 놓인 지대석 길이는 1.5m에 달한다. 석탑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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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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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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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상륜부)으로 이루어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2∼3단이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노반),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복발),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보주)이 차례로 얹혀있다. 한때 기단부가 파손되었으나 1976년에 완전 보수하였다. 고려후기 광양지역의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석탑이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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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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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신사리(眞身舍利) :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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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이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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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agoda is a symbolic monument enshrining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Although not all pagodas contain the true remains, they are nonetheless worshiped as sacred places that enshrine the Buddha.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무덤과 같은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br/>이 탑은 나지막한 야산 평지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이 사찰이 경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문헌 등의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렵다. 탑은 2층의 받침돌, 3층의 몸돌과 지붕돌, 그리고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넓은 판재 모양의 받침돌 위에 윗 받침돌이 놓이는데 네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버팀 기둥을 조각했다. 위층 받침돌 위에 갑석이 놓이는데 윗면은 경사가 크고 두께도 두꺼운 편이다. 몸돌과 머릿돌은 모두 1개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으며, 지붕돌의 밑면 받침도 3단으로 매우 형식화되어 있다. 낙수면은 곡선을 보이다가 끝에 이르러 가벼운 반전을 보이며, 머리장식은 둥근 노반(露盤)과 연봉우리 모양의 복발(覆鉢)이 남아 있다. <br/>전체적인 수법이 섬세하지 못하며, 지붕돌의 밑면 받침 등이 퇴화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 분야별 자문위원 2
 
#*문안 첫 구절에서 석탑의 일반 정의 수정 필요. <br/>‘부처의 유골’-> ‘부처의 유골의 일종인 사리’,‘진신사리’->‘실제 석가모니의 사리’
 
#*상륜부의 보주와 상륜 결실 설명 추가 필요. <br/>‘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다. ’ -> ‘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고, 그 위의 구슬 모양 장식 부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신앙의 대상이 된다. 라는 문장 삭제)<br/>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br/>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이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다. ''
 
  
====2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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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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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이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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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76년에 보수하였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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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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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10월 4일 (월) 20:01 판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한자 光陽 城隍里 三層石塔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 746번지
지정번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지정일 1972년 1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관리자 광양시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상륜부)으로 이루어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2∼3단이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노반),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복발),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보주)이 차례로 얹혀있다. 한때 기단부가 파손되었으나 1976년에 완전 보수하였다. 고려후기 광양지역의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석탑이다.


  • 진신사리(眞身舍利) :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

영문

A pagoda is a symbolic monument enshrining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Although not all pagodas contain the true remains, they are nonetheless worshiped as sacred places that enshrine the Buddha.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76년에 보수하였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머리장식은 받침,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얹혀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