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일원-금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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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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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금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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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冠塚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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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우리나라 고분 가운데 처음으로 금관(金冠)이 출토되어 금관총이라 이름 하였다. 1921년 9월 가옥 건축을 위해 흙을 파내다가 우연히 유물이 노출되어 긴급하게 수습 조사를 하였다.
금관과 금제허리띠 등 당시까지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많은 금제품들이 출토되어 ‘동양의 투탄카맨’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본, 積石木槨墳)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조사는 구조와 유물의 출토 상태 등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201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다시 발굴하여 그 구조를 좀 더 명확하게 살필 수 있었다.
고분은 지상에 덧널을 설치하고 그를 감싸도록 나무기둥을 세워가며 돌을 쌓아 돌무지를 마련하였다. 덧널은 재발굴에서 바깥덧널이 추가로 확인되어 이중 구조임이 밝혀졌다.
재발굴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명문을 새긴 칼집 조각이 출토되었다.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기에 그가 누구인지, 실제 금관총의 주인인지 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무덤의 주인이 실제 이사지왕은 아닐지라도 신라 마립간기의 왕족임은 분명하다.
- 이사지왕(尒斯智王) :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왕의 이름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이사(尒斯)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