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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금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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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금척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Geumcheok-ri, Gyeongju
경주 금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금척리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Geumcheok-ri, Gyeongju
한자 慶州 金尺里 古墳群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261
지정번호 사적 제43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수량/면적 146,243㎡
웹사이트 경주 금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유적은 대구-경주간 국도변의 양쪽에 50여기의 크고 작은 봉토분이 모여있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하늘에서 받았다는 금으로 만든 자(金尺)를 숨기기 위해 40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마을 이름도 금척리이다.

고분군은 서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큰 고분이 자리하는데, 가장 서쪽에는 표주박모양의 고분이 있어 주목을 끈다. 1952년에 대구-경주간 국도공사로 고분의 반이 잘려나가게 된 2기를 발굴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신라에서 주로 사용한 돌무지덧널무덤임이 확인되었고, 금제 가는고리 귀걸이, 은제 허리띠, 호박옥, 굽은 옥(曲玉), 쇠칼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신라시대 수도의 6부(六部) 가운데 하나인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라고 불렀던 행정조직체가 있던 곳으로 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분의 구조는 5, 6세기 모량부의 귀족들이 묻힌 고분들임을 알려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모여있는 52기의 고분들은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무덤들은 서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커지지만, 경주 시내의 무덤들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했던 지방 귀족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52년 국립박물관에서 구와 경주를 잇는 도로 공사로 파괴되었던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을 설치한 형태임을 확인하였으며, 금귀고리와 굽은 옥, 토기 등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이곳에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실제로 전체 고분 중 38기가 한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