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항교
| 비인향교 |
|
| 대표명칭 | 비인향교 |
|---|---|
| 한자 | 庇仁鄕校 |
|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비인로136번길 68 (성내리)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23일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향교 |
| 수량/면적 | 1,474㎡ |
| 웹사이트 | 비인향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비인향교는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각 고을(군현)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으로 성현의 제사와 유학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향교는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이 건국된 후 향교 제도가 정비되었던 조선 초기로 추정되며,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고 알려진다. 동국여지승람(1486)에 의하면 관아 북쪽 2리에 위치하다가 중종 25년(1530)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 3리로 이건(移建)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효종 7년(1656)의 동국여지지에는 현의 동쪽 1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후 1713년(숙종 39년)에 새로 고쳐 지으며 나라에서 내려준 향과 축문으로 제사를 올렸다.
비인향교에는 1700년대 말부터 향교 운영을 위해 만든 기록이 전해지는데, 향교의 재산인 토지 현황, 노비를 사고판 내용, 향교에 있는 솥과 술잔 등의 물품 목록과 함께, 1831년(순조 31)에 대성전을 보수하며 쓴 비용도 확인된다. 특히 교육을 부흥하기 위하여 1857년에 비인의 유림들이 재물을 내어 흥학계(興學契)를 조직한 기록과, 이후에도 각종 경비를 마련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1800년대 향교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갑오개혁(1894) 이후 향교의 교육 기능은 중단되었지만, 지금도 봄가을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비인향교는 구릉지에 입지하고 좌향은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향교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의 명륜당(明倫堂)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비인향교는 동·서무와 동·서재가 모두 없다. 홍살문(紅箭門)은 외삼문에서 약 100m 앞에 위치하고 하마비(下馬碑)는 현재 도로변에 있다. ‘하마’는 향교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 들어오라는 의미이다.
- 5성: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 송조4현: 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
- 우리나라 18현: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