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제2남옹성(남한산성)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9월 8일 (월) 10:21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제2남옹성 第二南甕城
Goto.png 종합안내판: 남한산성



해설문

국문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아 만든 시설물이다. 조선시대 남한산성과 관련된 기록 및 고지도에는 본성에 성벽을 덧대고 길게 돌출시킨 형태를 옹성으로 표기하고 있다.* 남한산성에는 남쪽에 3개,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 본성에만 모두 옹성 5개가 있다.

제1~3남옹성은 검단산 정상과 마주한 곳에 축조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검단산을 점거하고 남한산성으로 화포 공격을 해서 남한산성 남쪽 성벽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인조 16년(1638) 남한산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남쪽에 옹성 3개를 축조했다.

제2남옹성은 남한산성의 옹성 5개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옹성으로, 제1남옹성과 제3남옹성의 가운데 있어 전투 시 양쪽으로 지원이 가능했다.

옹성의 전체 둘레는 318m, 내부 면적은 3,583㎡이다. 제2남옹성의 포루는 남한산성의 다른 포루가 개방형인데 비해 홍예문(아치형문)을 설치한 폐쇄형이다. 포루에는 포좌 9개소, 건물지 1개소가 있다. 최초 포루의 흔적이 포루 하단 성벽에 남아 있는데 포좌가 11개소였다가, 후대에 개축하면서 9개소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 조선시대에 옹성은 성문뿐만 아니라 성벽의 보호를 위하여 돌출시켜 쌓은 시설을 포괄적으로 지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옹성은 성문의 방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성문 밖에 쌓은 성벽이다. 남한산성에는 남쪽에 3개,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 본성에만 모두 5개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 남쪽의 제1~3남옹성은 1638년에 지어졌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은 남한산성 남쪽의 검단산을 점거하고 산성 쪽으로 화포를 쏘아, 남한산성 남쪽 성벽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남한산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옹성과 포루를 함께 축조하였다. 그러나 이후 청과의 외교적 마찰로 제2남옹성과 제3남옹성의 포루는 철거되었다가 후대에 개축되었다.

제2남옹성의 전체 둘레는 318m, 내부 면적은 3,583㎡으로, 남한산성의 5개 옹성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제1남옹성과 제3남옹성 사이에 있어 전투 시 양쪽으로 지원이 가능했다. 남한산성의 다른 포루들은 모두 개방형인데 비해, 제2남옹성의 포루는 아치형 문을 설치한 폐쇄형이었다. 포루에는 포좌 9개소, 건물지 1개소가 있다. 원래는 포좌가 11개소였다가 후대에 개축하면서 9개소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