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남옹성(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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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남옹성 第一南甕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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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아 만든 시설물이다. 조선시대 남한산성과 관련된 기록 및 고지도에는 본성에 성벽을 덧대고 길게 돌출시킨 형태를 옹성으로 표기하고 있다.* 남한산성에는 남쪽에 3개,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 본성에만 모두 옹성 5개가 있다.
제1~3남옹성은 검단산 정상과 마주한 곳에 축조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검단산을 점거하고 남한산성으로 화포 공격을 해서 남한산성 남쪽 성벽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인조 16년(1638) 남한산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남쪽에 옹성 3개를 축조했다.
축조 이후 청과의 외교적 마찰로 제2·3남옹성의 포루는 철거되었으나, 제1남옹성은 옹성과 포루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남한산성도」에 제2·3남옹성은 옹성(擁城)으로 표기되어 있는 반면, 제1남옹성은 남포루(南砲樓)로 표기되어 있는 점과도 일치한다.
발굴 결과, 제1남옹성의 전체 둘레는 426m, 내부 면적은 2,381㎡로 확인되었다. 옹성은 크게 포루(砲壘), 고대(高臺, 높이 쌓은 대)로 구성된다. 포루에는 포좌 8개소와 화약, 포환 등의 무기를 저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군포 1개소가 확인되었고 포좌에는 이방(포좌 내부에 포탄 등을 보관하던 공간)이 있다. 고대는 주변 관측 및 수어장대와 남장대간 신호 체계를 위하여 구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과 포좌 상부로는 회곽로(성곽을 따라 돌 수 있는 통로)와 여장(女墻, 성벽 위에 쌓은 담장)이 확인되었다.
- 조선시대에 옹성은 성문뿐만 아니라 성벽의 보호를 위하여 돌출시켜 쌓은 시설을 포괄적으로 지칭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