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경덕단
밀양 경덕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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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경덕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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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景德壇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854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등록)일 | 2004년 10월 21일 |
수량/면적 | 1곽(2,595㎡) |
웹사이트 | 밀양 경덕단,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경덕단은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상조(上祖)인 밀성대군 박언침(密城大君 朴彦忱)과 아들 박욱(朴郁), 손자 박란(朴瀾) 등 3세조(三世祖)의 단비(壇碑)를 모신 제단(祭壇)이다. 밀성대군 박언침(密城大君 朴彦快)은 신라 제55대 경명왕(景明王)의 8大君 중 장자(長子)이며 , 스스로 왕통계승을 불사(不嗣)하자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奉)해졌다. 박욱(朴郁)은 장자(長子)인 박란(朴瀾)과 함께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하는데 크게 공훈을 세워 진무공신 삼중대광삼한벽공도대장군(鎭撫功臣 三重大匡三韓壁控都大將軍)이 되어 벽상공신(壁上功臣)에 등임 되고, 박란(朴瀾)은 요동독포사(遼東督捕使)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3세조(3世祖)의 묘소가 전해 오지 못하자 정국군 박위(靖國君 朴葳) 장군의 16대 손(孫)인 창번공 시독 박해철(滄樊公 侍讀 朴海澈, 1868~1934)이 종지(宗旨)를 모은 후 사재(私財)를 들여 1927년(丁酉)에 건립했다. 상조(上祖)인 밀성대군은 중앙수좌(中央首座)에, 삼중 대광삼한벽공도대장군 박욱(朴郁)은 동단(東壇)에, 요동독포사 박란(朴潤)은 서단(西壇)에 각각 배치하였으며 매년 음력(陰曆) 9월 9일~10일까지 양일간에 걸쳐 경향각지에서 모인 종원(宗員)들이 주축이 되어 단향(壇享)을 봉행(奉行)한다. 비문(碑文)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으로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알려진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선생이 전서(篆書)했다. 단비(壇碑)를 감싸고 있는 벽면에는 당시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화려한 모양의 타일 장식이 그대로 남아있고, 부속건물인 삼문(三門)의 내벽(內壁)에는 매화, 송학, 난 등의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고, 외벽(外壁)에는 각종 길상(吉祥) 문양이 원형으로 남아 있어 건립 당시 화려하고 웅장했던 경덕단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 경명왕은 신라 제55대 아니고 제54대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경덕단은 밀양박씨의 시조인 밀성대군 박언침, 아들 박욱, 손자 박란 등 3대를 기리는 비석을 모신 제단으로 1927년에 세워졌다.
박언침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재위 917-924)의 여덟 왕자 중 장자이다. 경명왕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박언침은 스스로 왕통 계승을 고사하였고 경명왕의 동생인 경애왕(재위 924-927)이 왕위를 이었다. 박언침은 이후 밀양 지역에 정착하여 밀양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박욱과 박란은 밀양 지역의 대표적인 호족으로, 왕건(877-943, 후의 고려 태조)이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우는 데 크게 공훈을 세워, 고려 왕조의 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 3세조의 묘소가 전해지지 않아, 후손인 박해철(1868-1934)이 문중의 뜻을 모은 후 사재를 들여 이 제단을 건립하였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9월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에 걸쳐 후손들이 제사를 올린다.
제단 구역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붉은 벽돌로 짓고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외벽의 각종 길상 문양과 내벽의 매화, 송학, 난 등의 벽화가 원형대로 남아 있어, 건립 당시 화려하고 웅장했던 경덕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제단에는 왼쪽에서부터 박란, 박언침, 박욱의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앞면에 전서로 새겨진 비의 이름은 독립운동가이자 최고의 서예가로 알려진 오세창(1864-1953)의 글씨이다. 제단을 중심으로 삼면의 담벽이 둘러 있는데, 벽면에는 당시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화려한 모양의 타일 장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