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읍성 북문(망화문)
홍주읍성 북문(망화문) 洪州邑城 北門(望華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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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홍성 홍주읍성 |
해설문
국문
홍주읍성 북문은 조선 초기 성을 쌓을 때부터 출입문의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는 문루* 없이 옹성*만 있었으나 1823년 대대적으로 읍성을 보수하면서 문루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1870년 수리 기록과 1872년 지도에 묘사된 북문의 모양을 살펴보면, 북문은 개거식* 성문으로 정면 3칸의 팔작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루는 1894년에 발생한 동학농민혁명 당시 서문과 함께 없어졌으며, 주변 성벽도 일제 강점기 이후 읍성 안에 민가와 공공기관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2017년 발굴 조사에서는 북문지와 성벽, 옹성의 전체 현황과 구조를 확인하고, 2020년 문루를 제외한 체성*과 옹성을 복원하였다. 이후 고증을 거쳐 2024년에 문루를 세우고, 북문 일대를 복원하였다.
- 문루(門樓): 성위에 쌓은 구조물
- 옹성(甕城): 성문 보호 목적으로 성문 밖에 이중의 성벽을 둔 구조물
- 개거식(開渠式): 성곽을 축조할 때 성문의 넓이만큼 성벽을 띄어 쌓고 상부에 문루를 만드는 방식
- 팔작(八作)지붕: 지붕의 모습이 팔(八)자와 비슷한 모양
- 체성(體城):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성곽을 둘러싼 성벽
영문
Northern Gate (Manghwamun Gate) of Hongjueupseong Walled Town
Manghwamun Gate is the northern gate of Hongjueupseong Walled Town. It has served as the main(?) gate since the renovation of the walled town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Originally a stone structure with semi-circular wall, the gate is presumed to have been with a wooden pavilion during a major renovation of the walled town in 1823. Dur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the pavilion as well as the walled town’s western gate were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nd following decades, the walled town was significantly damaged by the construction of residential houses and buildings for various public institutions.
Walled town repair records from 1870 and a map from 1872 show that the norther gate had a width similar to that of the town wall and had a wooden pavilion on top, presumably with a hip-and-gable roof and measuring three bays in width. An excavation conducted in 2017 confirmed the structural remains of the northern gate, the (adjacent?) walls, and the semi-circular wall. The stone structure of the gate with its semi-circular wall was restored in 2020. In 2024, having verified the historical evidence, the wooden pavilion was also built anew, thus completing the restoration of the whole gate.
영문 해설 내용
망화문은 홍주읍성의 북문이다. 이 문은 조선 초기 성을 보수할 때부터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문루 없이 옹성만 있었으나 1823년 대대적으로 읍성을 보수하면서 문루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루는 1894년에 발생한 동학농민혁명 당시 서문과 함께 없어졌다. 주변 성벽도 일제강점기 이후 읍성 안에 민가와 공공기관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1870년 홍주읍성의 수리 기록과 1872년에 발간된 지도에 묘사된 북문의 모양을 살펴보면, 북문은 성문의 넓이만큼 성벽을 띄어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얹은 형식이었으며 정면 3칸의 팔작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발굴조사를 통해 북문지, 성벽, 옹성의 전체 구조를 확인하였다. 2020년 성벽과 옹성을 복원하였고, 이후 고증을 거쳐 2024년에 문루를 세우고 북문 일대를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