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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창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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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서원
대표명칭 창동서원
한자 滄東書院
주소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 (창동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1984년 4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창동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동서원은 근대 유학자 후창 김택술(後滄 金澤述, 1884~1954)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5년에 지방 유림들이 김택술이 태어난 이평면 창동리에 세운 서원이다. 김택술은 유학자 간재 전우(艮齋 田愚)의 가르침을 받아 항일 의식이 강했다. 단발령과 창씨개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일제가 주는 배급은 받지 않고 솔잎과 감자로 연명하였다. 평생 후학 양성에 힘쓰며 제자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했다.

서원 안에는 김택술의 문집인 『후창집』의 영인본과 석판본을 비롯하여 많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영문

Changdongseowon Confucian Academy

A Confucian academy, called seowon in Korean, is a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at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Changdongseowon Confucian Academy was built in 1965 by the local Confucian community to commemorate scholar Kim Taek-sul (1884-1954, pen name: Huchang) in Changdong-ri, Kim Taek-sul's hometown. Many books such as a collection of Kim Taek-sul's works entitled Huchangjip, are displayed inside the Confucian academy.

Kim Taek-sul was a scholar with a strong anti-Japanese sentiment who devoted his life to teaching stude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forced all Koreans to change their names to Japanese names, but Kim Taek-sul rejected this, thus becoming a surveillance target of the Japanese. In addition, he did not receive food distributed by the Japanese and survived only on pine needles and potatoes.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창동서원은 학자 김택술(1884-1954, 호: 후창)을 기리기 위하여 1965년에 지방 유림들이 김택술의 고향 창동리에 세웠다. 서원 안에는 김택술의 문집인 『후창집』 등 많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김택술은 평생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항일의식이 강한 학자였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한국인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는데, 김택술은 이를 거부하여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또한 일제가 배급하는 음식은 받지 않고 솔잎과 감자로만 연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