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부 관아
영월부 관아 Yeongwol-bu Government Off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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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월부 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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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Yeongwol-bu Government Office |
한자 | 寧越府 官衙 |
주소 | 강원도 영월군 중앙로 61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534호 |
지정(등록)일 | 2016년 3월 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객사건물 3동(관풍헌,정청,서익헌) 외 자규루/5,808㎡ |
웹사이트 | 영월부 관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관아는 조선 시대 관청으로 수령이 정무를 보는 동헌과 생활하는 내아, 관리들이 집무를 보던 부속 건물 등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동헌 가까이에는 객사를 두어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나 대궐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절을 하던 망궐례를 지냈으며, 사신들이 머물 수 있게 하였다. 현재 영월부 관아는 동헌 영역은 모두 사라지고, 객사 영역의 건물과 자규루만 남아 있다. 영월부 관아의 모습은 정조 15년(1791)에 그려진 ‘월중도(越中圖)’에 잘 표현되어 있다. 월중도는 영월에 남은 단종의 자취와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8폭 그림으로 제작한 화첩이다.
객사의 동익헌인 관풍헌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벼슬이나 지위가 낮아짐)된 채 17년 짧은 생을 마감한 곳으로 전한다. 세조 3년(1457)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지내다가 홍수가 나자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자규루(당시 매죽루)에 자주 올라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을 담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태조 5년(1396)에 세웠다고 전하며, 정조 15년(1791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객사의 동익헌인 관풍헌은 앞면 5칸, 서익헌은 앞면 4칸, 중앙 정청은 앞면 3칸이며, 자규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구성된 누각이다.
2013년과 2015년에 발굴 조사를 하여 건물터, 박석(바닥 포장돌) 시설, 내삼문(바깥채 안쪽에 세 칸으로 세운 대문) 터를 비롯하여 객사 건물로부터 내삼문 터에 이르는 보도 시설과 월중도에 표현된 관풍헌으로부터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 시설을 확인하였다. ‘월중도’에는 객사 바로 북쪽에 동헌 영역의 건물군이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도시화되면서 근현대 건물이 들어서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영문
Yeongwol-bu Government Office
A government office served as the administrative center of a local distric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was home to facilities such as a magistrate’s office and residence, a guesthouse (which also served as a royal shrine), and numerous auxiliary buildings.
The government office of Yeongwol-bu District is said to have been established in 1396. In 1457, King Danjong (1441-1457, r. 1452-1455), the 6th ruler of Joseon, was sentenced to death while staying here following his exile to Yeongwol after his uncle Prince Suyang (i.e. King Sejo, r. 1455-1468) usurped the throne. In 1791, the office underwent a renovation. The appearance of the government office at this time is recorded in Scenes of Yeongwol (越中圖), a collection of eight paintings that depict historical sites in the Yeongwol area related to King Danjong. All of the government office buildings apart from the guesthouse and a pavilion were demolished in the early 20th century. In 2013 and 2015, the site was excavated, revealing the remains of several building sites and stone walkways. However, due to the development of the surrounding area, the lost government office buildings could not be reconstructed.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 영월 지역을 관할하던 관아가 있던 곳이다. 현재 영월부 관아에는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 거주 공간인 내아, 관리들의 집무실인 부속 건물들은 모두 없어졌고, 객사와 누각인 자규루만 남아 있다.
객사는 관아에 설치했던 주요 건물 중 하나이다. 가운데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정청이 있고, 좌우 양쪽에는 고을을 찾은 중요한 손님이나 관원이 숙소로 사용되던 익헌이 있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1396년에 세우고, 1791년에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객사의 동익헌인 관풍헌은 조선의 제6대 왕인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이 세상을 떠난 곳으로 전한다. 단종은 숙부인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1457년 영월에 유배되었다. 처음엔 청령포에서 지냈으나, 홍수가 염려되어 곧 이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단종은 자규루에 자주 올라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을 담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영월부 관아의 원래 모습은 1791년에 그려진 「월중도(越中圖)」에 기록되어 있다. 「월중도」는 영월에 있는 단종 및 충신들과 관련한 장소를 8폭의 그림으로 제작한 화첩이며, 관아는 제7폭에 그려졌다.
2013년과 2015년에 발굴 조사를 하여 건물터, 박석 시설, 내삼문 터를 비롯하여 객사로부터 내삼문 터에 이르는 보도 시설과 관풍헌으로부터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 시설을 확인하였다. 「월중도」에는 객사 바로 북쪽에 동헌 영역의 건물군이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도시화되면서 근현대 건물이 들어서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