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하정(견훤유적지)
금하정 金霞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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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견훤유적지 |
해설문
국문
금하정은 하은 김태영(霞隱 金泰永, 1869~1951)이 선군(先君, 돌아가신 아버지) 인석하 김상보(石下 金商輔)를 기리기 위해 1929년에 건립한 순천김씨(順天金氏) 정자이다. 김태영의 본관은 순천, 자는 사즙(士楫), 호는 하은(霞隱)이다. 소양서원(가은읍 전곡리 소재)에 배향된 인백당 김낙춘(忍百堂 金樂春, 1525~1586)의 13세손이며,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김숙(金璹)의 11세손이다.
부친인 김상보의 4남 3여 중 장남으로 가은 소양(瀟陽, 지금의 가은읍 전곡리)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 장남으로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광무 7년(1903)에 통훈대부행중추원의관(通訓大夫行中樞院議官)으로 벼슬길을 나아갔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의 운명이 다하자 낙향하여 스스로 호를 하은이라 하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하에서도 사대부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자 월담사(月潭祠, 가은읍 작천리 소재)와 소양서원 등을 보수하였다. 평소 마을 골짜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생활하던 선군의 뜻을 새겨 회갑 때 금하정을 세웠다.
계미(癸未, 2003년) 2월
도사공파종중대표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금하정은 순천김씨 문중의 김태영(1869-1951)이 돌아가신 아버지 김상보를 기리기 위해 1929년에 건립하였다. 김태영은 김상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인근의 전곡리에서 태어났다. 1903년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1910년 한국이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때 김태영은 자신의 호를 “안개 속에 숨는다”는 뜻의 “하은”이라 하였다.
인근에는 순천김씨의 중흥조 김승주(1354-1424)를 추모하는 월담사와 김태영의 13대 선조인 김낙춘(1525-1586)이 배향된 소양서원이 있다. 김태영은 일제강점기(1910-1945)에도 사대부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자 월담사와 소양서원을 보수하였고, 평소 마을 골짜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던 아버지의 뜻을 새겨 금하정을 세웠다.
2003년 2월
도사공파종중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