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관
우화관 于華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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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18
- 1789년(정조 13) 창건
- 1920년대 철거
수원부의 객사(客舍)로 정청의 이름이 우화관인데 정조가 직접 지었다. 1789년(정조 13)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동헌인 장남헌 북쪽에다 객사를 마련하였다. 정청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절을 올렸다. 정청 좌우에 둔 부속채는 수원을 오가는 관리들의 숙소로 쓰였다.
가운데 정청은 정면 3칸이며 양쪽에 둔 부속채는 동익사 4칸, 서익사 3칸으로 동쪽의 비중을 건물에 드러냈다. 정청의 지붕을 좌우 부속채보다 높게 만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객사의 전형을 따른 모습이다. 행궁의 주요 건물은 대부분 동쪽을 정면으로 삼았지만 우화관은 정청에 모신 전패의 방향을 고려하여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20세기에 들어 객사의 기능이 사라진 뒤에 신풍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가 2013년 광교신도시로 학교를 이전하면서 객사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본래 모습을 회복하였다.
2024
- 1789년(정조 13) 창건
- 2023년 복원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다. 객사는 지방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국왕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곳이면서,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다. 이를 위해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는 정청(正廳)을 중심으로 방과 마루가 있는 공간을 좌우에 날개처럼 붙인 모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화관도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우화관의 정청은 바닥에 벽돌을 깔아 특별히 벽대청(甓大廳)이라 불렀다.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기 때문에 화성행궁 전체가 동향으로 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화관은 남향으로 건립되었다
우화관은 건립초기 팔달관(八達館)으로 불리었으나 1793년 화성유수부로 승격된 후, 정조의 명에 따라 화(華) 지역을 살피러 다니던 요(堯)임금 시절처럼 태평시대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우화관으로 개명되었다.
영문
Uhwagwan Guesthouse
2018
Uhwagwan was built as a shrine to hold a wooden tablet symbolizing the king and as a lodging facility for officials from other regions. During the Joseon period, a wooden tablet was enshrined in each local government office to exhibit the king’s sovereignty across the country.
The long, straight building of Uhwagwan consists of three sections. The main chamber in the center was where the wooden tablet was enshrined. Here, the local magistrate performed a ceremony to make a deep bow toward the royal capital on the 1st and 15th days of each month. Unlike most of the main buildings in the temporary palace which face in a easterly direction, this building faces southward so that the magistrate would be bowing in the direction of the royal capital to the north. The floor of the main chamber was covered with stone tiles, to make it proper for the ceremony, and its roof was raised higher than those of the side sections to distinguish it.
The wing sections include a room with an under-floor heating system, which was used by officials from other regions, and a wooden-floor hall, which could accommodate many people during various events.
2024
영문 해설 내용
2018
우화관은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절을 올리거나, 외부에서 온 관리들이 숙소로 이용하던 건물이다. 조선시대 각 고을의 관아에 모셔진 전패는 지방에 대한 왕권의 지배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일자로 긴 형태인 우화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중앙의 정청에는 전패를 모시고 유수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절을 올렸다. 의례를 치르기에 알맞도록 정청 바닥은 전돌을 깔았고, 지붕은 좌우 익사보다 높게 올렸다. 좌우 익사에는 외부에서 온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온돌방과 각종 행사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청이 있다.
행궁의 주요 건물들이 대부분 동쪽을 향해 지어진 것과는 달리 우화관은 남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임금이 계시는 북쪽 방향으로 전패를 모시기 위해서이다.
2024
- 1789년(정조 13) 창건
- 2023년 복원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다.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고을 관아에 설치했던 중요한 건물이다. 객사에는 가운데에 왕의 전패를 모신 정청이 있고, 좌우 양쪽에는 고을을 찾은 중요한 손님이나 관원이 숙소로 사용되던 익헌이 있다.
우화관도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화성행궁 전체는 동향으로 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화관은 남향으로 건립되었다. 우화관이라는 이름은 1793년 정조(재위 1776-1800)의 명에 따라 붙여졌으며, 화(華) 지역을 살피러 다니던 요(堯)임금 시절처럼 태평시대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의 우화관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철거되었고, 지금의 우화관은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2023년에 복원되었다.
- 봉수당 "영문 수정" 원고 분량 정도로 맞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