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 남성골산성
부강 남성골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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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강 남성골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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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芙江 南城谷山城 |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산 24 외 29필지 |
지정(등록) 종목 |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9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58,167㎡ |
웹사이트 | 부강 남성골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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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 남성골산성은 5세기 중·후반에 고구려에서 쌓은 산성이다. 목책(나무 울타리)과 성벽으로 띠를 두르듯 쌓아 올린 퇴뫼식 산성*이며 전체 둘레는 440m 정도이다.
목책은 내곽과 외곽을 이중으로 두른 형태이며 성벽은 흙과 돌로 되어 있다. 외곽에서 내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방어하기 위해 4개의 호*가 설치되어 있다. 발굴 과정에서 집터, 창고시설, 토기가마와 토기, 철제 말 재갈, 금귀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금강을 끼고 있는 부강은 삼국시대부터 수로와 육로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우리나라에서 성터가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부강에서 발견된 10곳 정도의 성터 중심에 위치한 남성골산성은 한반도 중부 지역에 영향력을 확장하려던 고구려의 군사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 자료로 평가된다.
- 퇴뫼식 산성: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형식
- 호(濠) : 성 주위의 방어와 경계용 구덩이
2
부강 남성골산성은 5세기 중·후반에 고구려에서 쌓은 퇴뫼식 산성*이다. 목책(나무 울타리), 흙, 돌을 활용하여 쌓아 올렸으며, 산성의 전체 면적은 5,600㎡이고 둘레는 440m 정도이다. 저장용 구덩이, 집터, 창고시설, 토기가마와 토기, 철제 말 재갈, 금귀걸이 등이 산성의 내부에서 출토되었다.
산성은 정상부의 내곽과 경사면의 외곽이 이중으로 둘러 있는 형태이며, 4개의 호*가 외곽에서 내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다. 내곽은 두 겹의 목책으로 되어 있으며, 목책 안쪽에서 원형의 구덩이들과 집터 등이 발견되었다. 내곽의 서쪽과 동쪽에 문터가 위치해 있으며, 치성* 1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동쪽 문터의 돌로 쌓은 성벽은 기존 목책 성벽이 불타고 난 후 조성한 것이다. 성을 쌓는 기법이 목책에서 돌로 변화하였다는 점에서, 동쪽 문터의 성벽은 성벽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가장자리의 외곽도 두 겹의 목책으로 설치되었으며, 구들이 있는 집과 창고 자리, 치성 2개소, 토기 등이 목책 안쪽에서 발굴되었다.
남성골산성의 북쪽에는 성재산성(성재山城)과 복두산성(幞頭山城)이 있고, 남동쪽에는 노고봉산성(老姑峰山城)과 애기바위산성(애기바위山城)이 있으며, 남쪽과 서쪽에는 각각 성산성(城山城)과 테뫼산성(테뫼山城) 등이 있다. 밀집해 있는 산성들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남성골산성은 한반도 중부 지역에 진출한 고구려의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 퇴뫼식 산성 :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산성
- 호(濠) : 성 주위의 방어와 경계용 구덩이
- 치성(雉城) :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