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향교
천안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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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천안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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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安鄕校 |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향교1길 89 (유량동)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10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23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2,324㎡ |
웹사이트 | 천안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각 고을(군현)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 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천안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 그 자리에 다시 세운 것으로 전한다. 이와 관련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명륜당 상량문에서 1656년 다시 세웠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852년에 펴낸 천안의 지리지 영성지(寧城誌)에 의하면 교생 정원은 50명이고, 정원 외[額外] 교생은 20명이며, 향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200명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1800년대에 향교 재정이 어려워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관찰사를 비롯해 군수와 천안의 사족들이 자금을 대어 운영을 이어갔던 기록이 전한다.
건물은 앞에 학문을 하는 명륜당을 두고, 뒤에 제향을 올리는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식 구조로 배치되었다. 명륜당 앞에는 유생들이 머물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고, 대성전 앞에는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가 있다.
영문
Cheona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A local Confucian school, called hyanggyo in Korean, is a public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Such schools were established in jurisdictions across the country to serve as a local shrine for Confucius and to promote Confucian education and nurture local elites. Students learned about poetry composition,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y.
It is said that Cheona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was established in 1398,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rebuilt in 1606. The construction record of Myeongnundang Hall states that the building was built anew in 1656. According to a geographical survey of the Cheonan area published in 1856, 50 students were enrolled in the school, while about 200 people worked here. In the 19th century when the school’s financial situation worsened, wealthy families of Cheonan including governors and magistrates donated founds for it to continue operating.
From front to back, the school complex consists of a main gate, two dormitories, a lecture hall, an inner gate, two auxiliary shires, and a main shrine.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천안향교는 1398년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6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전한다. 명륜당은 상량문에서 1656년에 다시 세웠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852년에 펴낸 천안의 지리지에 의하면 교생 정원은 50명이고 향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200명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들어 향교 재정이 어려워지자 관찰사 및 군수를 비롯해 천안의 사족들이 자금을 대어 운영을 이어갔다고 한다.
현재 향교의 앞쪽에는 정문, 기숙사인 동서재, 교육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는 내삼문, 동서무와 대성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