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착량묘
통영 착량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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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통영 착량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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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統營 鑿梁廟 |
주소 | 경상남도 통영시 착량길 27 (당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13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2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6동(외삼문 9.10㎡,동재 35. 62㎡, 서재 25.14㎡) |
웹사이트 | 통영 착량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이듬해(1599)에 공을 따라 종군했던 수군과 이 고장 백성들이 뜻을 모아 초가사당을 짓고 공이 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이충무공 사당의 효시이다. 그 후 1877년(고종 14) 제198대 통제사 이규석(李奎奭)이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착량묘(鑿梁廟)라 칭했다. 이때 경내에 지방의 유림들이 공부하는 서재인 호상재(湖上齋)를 지어 이웃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한편 공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배우고 본받게 하였다. 착량(鑿梁, 판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불리어 온 이곳의 지명으로 일명 굴량(堀梁)이라 했으며, 육지와 미륵도 사이를 파서 해협을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착량묘는 현재 재단법인 통영 충렬사의 부속 사당으로 해마다 음력 11월 19일에 이충무공의 기신제(忌晨祭)를 지내고 있다.
영문
Changnyangmyo Shrine, Tongyeong
Changnyangmyo Shrine is a shrine commemorating Yi Sun-sin (1545-1598), an admir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n 1599, the navy following Yi Sun-sin and the people of this village built a thatched-roof house and began preparation for veneration rituals, while in 1877, Yi Gyu-seok, a descendant of Yi Sun-sin appointed as a commander, rebuilt it as a tile-roof building and named it Changnyangmyo. The name Changnyan means "making a bridge by digging" and comes from Japanese soldiers who were terribly defeated at the time of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1598 and made a bridge by digging the strait between the land and an island to retreat.
The current Changnyangmyo Shrine is used an auxiliary shrine of Chungnyeolsa Shrine which is located about 1.5 km to the northeast, and a veneration ritual is prepared each year on the 19th day of the 11th lunar month when Yi Sun-sin died. Apart from the shrine, in the complex are two dormitories and a custodian’s residence. The dormitory building on the left was built by Confucian scholars of this area during repairs in 1877 to teach texts to local children and to take example by studying the patriotic spirit and achievements of Yi Sun-sin here. The dormitory building on the right and the custodian’s residence were each built in 1979 and 1980, respectively.
영문 해설 내용
착량묘는 조선시대의 명장 이순신(1545-1598)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순신을 따르던 수군과 이 마을 백성들이 1599년에 초가를 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고, 1877년 이순신의 후손이자 통제사로 부임한 이규석이 기와건물로 사당을 고쳐 짓고 착량묘라는 이름을 붙였다. “착량”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참패한 왜군들이 육지와 섬 사이의 해협을 파서 다리를 만들며 도망했다는 데에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착량묘는 북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충렬사의 부속 사당으로 쓰이며 매년 이순신이 세상을 떠난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 외에도 동서재와 고직사가 있다. 서재는 1877년 중수할 때 이 지역의 유림들이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 지역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이순신의 호국정신과 업적을 배우고 본받게 하였다. 동재와 고직사는 각각 1979년, 1980년에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