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벽헌(삼척도호부 관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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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벽헌 凝碧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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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삼척도호부 관아지 |
해설문
국문
응벽헌은 진주관(眞珠觀)의 서헌(西軒)으로 기록에 의하면, 1518년(중종 13)에 부사 남순종(南順宗)이 창건하였다. 1520년(중종 15)에 부사 신광한(申光漢)은 아직 이름이 없던 건물을 보고 수헌(水軒)이라는 이름으로 사계절 풍광을 노래하는 사시사(四時詞)를 지었다. 응벽헌이라는 이름은 1536년(중종 31) 관찰사 윤풍형(尹豊亨)이 제액(題額)*하였다.
이후 1601년(선조 34) 부사 신경희(申景禧)가 남쪽 처마를 고쳤고, 1620년(광해군 12)에 부사 이여검(李汝儉)이 건물을 고쳤으며, 1662년(현종 3)에는 부사 허목(許穆)이 제액하고, 1708년(숙종 34)에는 부사 홍만기가 건물을 다시 고쳤다. 1737년(영조 13)에는 부사 이보욱(李普昱)이 건물을 고쳤고, 1769년(영조 45)에는 부사 이민보(李敏輔)가 단청하였다, 1786년(정조 10)에는 부사 서탁수(徐琢修)가 건물을 손질하여 고쳤으며, 1908년(순종 2)에 응벽헌을 헐게 되었다.
진주헌기(眞珠軒記)에서 부사 신광한이 “강산의 아름다움은 더하거나 뺀 것이 없는데도 이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강산이 더 아름다워졌다”라고 할 만큼 응벽헌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진 것으로 보인다.
삼척시는 2010년부터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받아 삼척도호부 관아지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를 근거로 하여 현재와 같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였다.
- 제액(題額): 액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