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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김적 및 김홍욱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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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4월 18일 (화) 16:5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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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김적 및 김홍욱 묘역
서산 김적 및 김홍욱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산 김적 및 김홍욱 묘역
한자 瑞山 金積 및 金弘郁 墓域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화곡길 50-13 (대로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0호
지정일 2010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수량/면적 무덤 2기, 신도비 1기
웹사이트 서산 김적 및 김홍욱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산 김적 및 김홍욱묘역은 단구자(丹丘子) 김적(1564~1646)과 학주(鶴洲) 김홍욱(1602~1654) 부자의 묘와 김홍욱 신도비*로 이루어져 있다. 김홍욱은 1654년(효종 5)에 소현세자 빈인 회빈 강씨와 두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줄 것을 효종에게 상소하였다가 죽게 되었으나, 그의 강직한 절개는 조선 사림의 상징이 되어 존경받았다. 그는 경주 김씨 학주공파의 중시조이며, 이 집안에서는 8명의 정승과 1명의 왕비가 나와 경주 김씨의 2대 명문으로 꼽힌다.

김홍욱 묘는 죽은 이듬해인 1655년(효종 6) 부모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지금 자리에 조성되었다. 이 묘는 그와 부인 동복 오씨의 봉분을 만들고 그 앞에 혼유석, 상석, 묘비, 망주석, 문인석 등을 세웠다. 묘비문은 1746년 박필주가 지어 세웠으나 1995년 비를 갈아 다시 세웠다. 김홍욱 신도비는 1674년에 맏아들 김세진이 덕원에 유배중이던 송시열을 찾아가 비문을 받았다가 1772년에 5세손 김구주에 이르러서야 묘역 입구인 현재 자리에 세워졌다.

김적 묘는 그와 부인 화순 최씨 봉분을 마련하고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묘비, 망주석, 동자석, 문인석 등을 설치했다. 이 묘는 상석 앞에 세워 놓던 묘표를 대신해 혼유석을 새로 만들고 봉분 옆에 묘비를 세워 17세기 무덤의 석물 변화를 잘 반영하였다. 묘비는 조익이 짓고, 김홍욱이 지었으며, 머리에는 용과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금관을 쓰고 예복을 입은 형태의 문인석도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 문신인 김적(1564-1646)과 김홍욱(1602-1654) 부자의 묘역이다. 묘역 입구에는 김홍욱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72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김적은 1609년 생원시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지만, 혼란한 정국에 탄식하여 사직한 뒤 고향 서산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김홍욱은 1635년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1564년 김홍욱은 소현세자(1612-1645)의 빈인 강씨(?-1646)와 강씨의 두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강씨는 왕권을 둘러싼 정쟁에서 모함을 받아 사약을 받았고, 아들들은 제주에 유배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들을 신원하는 것은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재위 1649-1659)의 정통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김홍욱은 격노한 효종으로부터 친국을 받다가 죽게 되었다. 김홍욱의 강직한 절개는 조선 사림의 상징으로 큰 존경을 받았으며, 1718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김적의 묘는 부인 화순최씨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두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묘비, 망주석, 동자석, 문인석 등이 있으며, 17세기 무덤의 석물 형식을 잘 보여준다. 묘비의 비문은 김홍욱이 지었으며, 비의 머릿돌에는 용과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김홍욱 묘는 부모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남동쪽으로 100여 m 떨어진 자리에 조성되었다. 부인 동복오씨의 묘가 나란히 놓여 있으며, 두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묘비, 망주석, 문인석 등이 있다. 묘비의 비문은 1746년 문신 박필주(1860-1748)가 지었고, 1995년 비를 갈아 다시 세웠다.

김홍욱 신도비의 비문은 1674년에 맏아들 김세진이 저명한 학자이자 문신인 송시열(1607-1689)을 직접 찾아가 받은 것이다. 신도비는 1772년 5세손 김구주(1740-1786)가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