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암(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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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암(궁)지
Cheonjeam Ritual House Site
천제암(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천제암(궁)지
영문명칭 Cheonjeam Ritual House Site
한자 天祭菴(宮)址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산64-2
지정(등록) 종목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4호
지정(등록)일 1995년 3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수량/면적 1,025.2㎡
웹사이트 천제암(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재궁(齋宮: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말 유학자 이색의 시를 목판에 새긴 시판(詩板)과 조선 태종1(400~1418 재위)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들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면 고려 시대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사는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궁은 고종 20년(1883)에 폐쇄되었고, 이곳에 있던 불상은 강화도 전등사로 옮겼다. 현재는 3단의 축대(築臺: 높이 쌓아 올린 대나 터)가 있고 축대 앞에 네 개의 돌기둥이 서 있으며, 오른편에 우물이 남아 있다. 조금 아래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인 ‘금표(禁標)’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영문

Cheonjeam Ritual House Site

This is the site of the ritual house of Chamseongdan, an ancient altar for worshiping the heavens. A ritual house is where ritual goods are stored and offerings are prepared. The name Cheonjeam means “hermitage of heavenly ritual.”

It is uncertain when this ritual house was first built. The renowned Confucian scholar Yi Saek (1328-1396) referenced the ritual house in his poetry, and King Taejong (r. 1400-141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held rituals here before ascending the throne, so it is presumed to date to at least the lat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Rituals are presumed to have continued to be held at Chamseongdan Altar until the late Joseon period. The ritual house was closed in 1883, and the Buddhist statues located here were moved to Jeondeungsa Temple (located about 5 km to the east). All that remains of this site is a three-tiered stone foundation, four stone pillars in front of the foundation, a well, and a rock inscribed with a warning to not enter the area.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재궁(齋宮)이다.

처음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유학자 이색(1328~1396)이 이곳에서 지었다는 시가 남아 있고,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들러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면 적어도 고려 말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사는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궁은 1883년에 폐쇄되었고, 이곳에 있던 불상은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강화도 전등사로 옮겨졌다. 현재는 3단의 축대가 있고 축대 앞에 네 개의 돌기둥이 서 있으며,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가 새겨진 바위와 우물 등이 남아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