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토성
익산 토성 Earthen Fortification, Ik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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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익산 토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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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Earthen Fortification, Iksan |
한자 | 益山 土城 |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산50-3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92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200,430㎡ |
웹사이트 | 익산 토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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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19
익산토성은 금마면 서고도리 오금산 봉우리와 남쪽 골짜기를 에워싸고 있는 680여m 둘레의 포곡식 산성이다. 그동안의 발굴조사에서 남쪽 성문터와 성벽, 서쪽 성문터와 성벽, 성 내부의 건물과 연관된 초석과 적심, 성벽 외부의 물을 채우지 않은 해자 등이 확인되었고, “수부(首府)”명 기와와 “북사(北舍)”명 토기편을 비롯한 백제 토기 등 출토되어 백제 때 쌓은 성곽으로 밝혀졌다.
이들 자료 중 ‘수부’명 기와는 백제 왕궁 <익산 왕궁리유적>과 <부여 관북리 유적>, 백제 성곽 <익산토성>과 <부여 부소산성>에서만 확인된 유물로써, 익산토성이 백제왕궁(왕궁리유적)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백제 왕도 익산을 이해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성곽유산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산성의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미륵사지와 미륵산성, 남쪽으로는 왕궁리유적을 비롯하여 멀리 전주·완주 일대를 조망할 수 있어서 백제왕도 익산 방어에 최적의 위치임을 알 수 있다.
익산토성은 ‘보덕성(報德城)’, ‘오금산성(五金山城)’이라고도 불리워졌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보덕성, 군의 서쪽 1리에 그 터가 남아있다”는 기록이 있다.
2021
해발 125m 오금산 정상과 남쪽 계곡을 두른 산성으로 산 이름을 따라 ‘오금산성’이라고 부른다. 보장왕의 아들로 통일신라에서 보덕국왕에 봉해졌던 안승(安勝)이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킨 보덕성이라고도 일컫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토성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름모꼴이며, 성곽 둘레가 690m 정도이다. 성안에서 남문과 서문 자리와 건물터가 확인되었는데, 남문 밑에는 개울물이 흐르는 수구(水口)자리도 있었다. 토성이라고 알려졌으나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백제 때 돌로 쌓은 성으로 확인되었다. 경사가 완만한 곳은 성벽 밖에 방어용 도랑이 있었다.
백제 때 도장무늬 기와를 비롯하여 연꽃무늬와 물결무늬 수막새 기와들이 발굴되었다. 특히 인근 익산 왕궁리 유적의 수도를 의미하는 ‘首府(수부)’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와 관청을 의미하는 ‘北舍(북사)’라는 명문이 있는 토기가 출토되어 백제 무왕 때 왕궁리 유적과 함께 운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영문
- Earthen Fortification, Iksan
2019
This earthen fortification encircling the top of Ogeumsan Mountain (125 m above sea level) and its southern valley was constructed between the late 6th and early 7th century during the Baekje period (18 BCE-660 CE).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to protect Baekje’s secondary capital in Wanggung-ri, Iksan, which is located about 2.5 km to the southeast.
Through excavation surveys, gate sites were found in the south and the west, as well as building foundations and a moat. Excavated artifacts include various pottery shards dating to the Baekje period. In particular, roof tiles with inscriptions of characters for the word “capital” were discovered, suggesting that this fortification was directly related to the secondary capital in Wanggung-ri.
This fortification measures about 680 m in perimeter.
2021
This fortress, encircling the summit of Ogeumsan Mountain (125 m above sea level) and its southern valley, is presumed to have been constructed between the late 6th and early 7th centuries during the Baekje period (18 BCE-660 CE). It was thought to be an earthen fortification, but excavations conducted in 0000 revealed that it is actually a stone fortress.
The fortress is shaped like a rhombus as seen from above, and its walls measure about 690 m in perimeter. It is located at a transportation juncture overlooking Mireuksa Temple Site to the north and Baekje’s secondary capital in Wanggung-ri to the southeast. It is therefore presumed to have helped defend the secondary capital. The locations of the south gate, west gate, and several building sites were verified. A defensive moat was installed outside the wall due to the gentle slope.
Roof tiles with stamped designs, roof-end tiles with lotus and wave designs, and earthenware dating to the Baekje period were unearthed. In particular, roof tiles with inscriptions of the characters for “capital” and earthenware with inscriptions of the characters for “government office” were discovered, suggesting that this fortress was closely related to the secondary capital.
영문 해설 내용
2019
오금산(해발 125m) 봉우리와 남쪽 골짜기를 에워싸고 있는 이 토성은 백제시기인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에 축성되었다. 남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왕궁리에 있던 백제의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남쪽과 서쪽에서 성문터가 확인되었고 건물의 초석과 해자 등이 발견되었다. 백제시대의 다양한 토기 조각들도 출토되었다. 특히 ‘수도’를 뜻하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이 토성이 왕궁리의 도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나타낸다.
전체 둘레는 약 680m이다.
2021
이 토성은 오금산 정상부(해발 125m)와 남쪽 계곡을 에워싸며 만들었다. 백제시기인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이라고 알려졌으나, 0000년에 수행된 발굴조사 결과 돌로 쌓은 성으로 밝혀졌다.
토성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름모꼴이며, 성곽 둘레가 690m 정도이다. 북쪽으로는 미륵사지를, 남동쪽으로는 왕궁리에 있던 백제의 왕궁을 조망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며, 왕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과 서문이 있던 자리와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경사가 완만한 곳은 성벽 밖에 방어용 도랑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백제시대의 도장무늬 기와, 연꽃무늬와 물결무늬 수막새,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수도’를 뜻하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와 관청을 의미하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이 당시 백제의 왕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자료
- 백제왕도 핵심유적 익산지역 발굴조사 마스터플랜 수립 보고서, 문화재청, 2020.12. -> 익산토성에서는 북으로 미륵사지와 미륵산성을 조망할 수 있고, 남쪽 서쪽 일대가 탁 트여있어 완주,전주,함라 일대가 모두 조망이 가능한 지리상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다. / 1980년 1차 조사에서 남성벽과 남문지가 확인되었다. 1984년 2차 조사에서 트렌치 조사를 통해 성의 전체적인 구조와 축조방법은 물론 대략적인 성의 규모 등을 확인하였다. 2016년~2018년 발굴조사에서는 성 내부 평탄지에서는 건물지와 연관된 초석과 적심이 확인되었으며, 서성벽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서문지를 발견하였다. 내부에서 부여지역과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는 ‘수부(首府)’명 명문와 및 ‘북사(北舍)’명 토기편과 같은 특징적인 유물들이 출토되어 익산토성의 성격규명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각 시기 조사 내용 이어짐) /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문화재 명칭인 ‘익산토성’은 현재까지 조사결과 토성이 아닌 석성으로 확인되어 재고의 여지가 있으며, 이는 향후 정밀 발굴조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조사결과, 익산토성은 성벽과 성벽 외부에 물을 채우지 않은 해자인 황을 갖추고 있는 이중적 구조라는 것이 밝혀졌다.
- 익산토성,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9&idx=8219
- 익산토성,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3335009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