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한산성 Namhansanseong Fort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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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남한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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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Namhansanseong Fortress |
한자 | 南漢山城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산1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57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608,705㎡ |
웹사이트 | 남한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남한산성은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벌봉과 한봉을 연결한다. 해발 500m 내외의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2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성곽 건축술의 원형과 시대별 발달을 잘 보여주는 남한산성은 672년 신라 주장성으로부터 시작하여 1624년 본격적인 축성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개·수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남한산성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의 10만이 넘는 대군에 맞서 인조가 47일간 항전하였던 전쟁터였으며, 동아시아 명·청 교체기에 힘의 각축장이었다. 17세기 남한산성의 축성과 광주유수부 설치는 국토 방어와 주민 거주의 개념을 통합한 ‘산성거주론’을 실천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에 축성한 이후 왕실의 보장처로서 역할을 하며, 300여년 넘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한 세계사적으로 보기 힘든 초대형 산성의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1896년 을미의병의 거점이 된 남한산성은 1907년 일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1917년 성내에 있던 광주군청이 산성 밖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4년 국립공원 지정, 1971년 도립공원 지정으로, 남한산성은 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유원지로 알려졌던 남한산성은 1999년부터 시작된 경기도의 남한산성 복원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2014년 6월에 1439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도문화재총람 등에는 모두 주장성이 673년 축성되었다고 함.
영문
Namhansanseong Fortress
Namhansanseong Fortress served as an auxiliary defense of Hanyang (today's northern Seoul), the walled capit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ith a circumference of over 12 km, the stone fortress encircles the valley between Cheongnyangsan and Namhansan Mountains (497.9 m and 522.1 m above sea level, respectively) and is situated at a strategic geographic location to the south of the Hangang River. Built at a high altitude using the natural terrain to its advantage, the large fortress was well-protected and could function as a self-sufficient stronghold during times of crisis.
The history of this site begins in 672 when Unified Silla (668-935) built a stone fortress here. This fortress remained in use for a millennium, playing a key defensive role in various foreign invasions. Due to its strategic importance, the fortress was built anew on a larger scale in 1624-1626. The new fortress was equipped with a temporary palace (haenggung), which served as a local administrative office in normal circumstances but could be used as a temporary residence for the king when he was traveling or as an emergency capital during national crises such as war.
Indeed,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King Injo (r. 1623-1649) sought refuge here for 47 days, during which time the fortress successfully withstood the attack of more than 100,000 enemy soldiers. In 1683, as a special military and administrative district was established here, the mountain fortress became a walled town where military and civil officials lived with their families.
In 1896, the fortress became the local hub of a nationwide anti-Japanese civilian resistance sparked by Japan’s assassination of the Korean queen consort, Empress Myeongseong (1851-1895), which was eventually suppressed by the Japanese-controlled royal forces. In 1907, after Korea had been forcibly made a Japanese protectorate, Japanese authorities destroyed many of the buildings inside the fortress. And during th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relocation of the county office in 1917 resulted in the area's further decline.
The fortress was designated as a national park in 1954 and a provincial park in 1971 and began to be maintained as such. Beginning in 1999, Gyeonggi-do Province began to restore and reconstruct the fortress wall and its many related historic sites, which include defensive structures, administrative buildings, and military training facilities. In June 2014, the site was inscribed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Namhansanseong Fortress demonstrates important changes in East Asian fortress masonry techniques.
- 25km라는 거리의 기준점이 어디인가요? The present-day Seoul is only 3 km away. And if we consider the Joseon-period borders of the city it is still only about 20 km (if measured from 경복궁 to 남한산성행궁) and even less if measured from the southeastern wall of 한양도성 to the northwestern wall of 남한산성.
- Maybe the original fortress was centered around 청량산, but the current fortress clearly isn’t.
here it says “청량산을 정점으로…축조되었다.”
- 참고
영문 해설 내용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수도를 지키던 성곽이다. 청량산(해발 497.9m)을 중심으로 해발 500m 내외의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2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여건을 갖추었다. 산성 주변에는 다양한 방어시설, 관청 건물,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으며,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남한산성이 있는 곳은 672년 신라가 석성을 쌓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계속해서 성벽을 고쳐 짓거나 증축하였고, 지금의 남한산성은 1624년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새로 짓거나 보수하였다. 1625년에는 성 안에 행궁을 지어 전쟁이나 반란 등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하였고, 실제로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재위 1623-1649)가 이곳으로 피난하여 청나라의 10만이 넘는 대군에 맞서 47일간 항전하였다. 1683년 남한산성에는 군사·행정을 통합한 특별 행정구역이 설치되었고, 군인, 지방 관료, 그 가족들이 거주하는 산성도시가 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분노한 백성들이 1896년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의병을 일으키면서 남한산성은 의병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친일세력이 장악한 관군에 의해 의병은 진압되었고, 일제는 1907년 남한산성에 있던 많은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1917년 성 안에 있던 광주군청이 산성 밖으로 이전하면서 남한산성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남한산성은 동아시아 성곽 건축술의 원형과 시대별 발달을 잘 보여주는 곳이며, 300여 년 넘게 체계적으로 관리·경영된 세계사적으로 보기 힘든 초대형 산성의 사례이다. 1954년 국립공원,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고, 1999년부터 시작된 경기도의 남한산성 복원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갤러리
남한산성 탐방안내도[1]
참고자료
- “남한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2258
- “남한산성”, 유네스코와 유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https://heritage.unesco.or.kr/%EB%82%A8%ED%95%9C%EC%82%B0%EC%84%B1/
- 세계유산 남한산성,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https://www.gg.go.kr/namhansansung-2
- “일상 품었던 읍성, 일상 지켜준 도성”, 서울신문, 2019.10.28.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029022005
주석
- ↑ “행궁 및 문화재 안내”,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