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사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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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사 신도비
Stele of Gwon Haeng
권태사신도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대표명칭 권태사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Gwon Haeng
한자 權太師 神道碑
주소 경북 안동시 서후면 권태사길 87 (성곡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3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권태사신도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2016

안동권씨(權氏)의 시조인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신도비이다. 능동재사(陵洞齋舍) 왼쪽에 있다. 그는 후삼국시기에 고려와 후백제가 싸운 고창(안동의 옛 지명)전투에서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승리함으로써 공신에 책봉되어 권씨를 사성(賜姓)받았다.

조선 현종(顯宗) 2년(1661) 권행의 24세손인 군수 권성원(權聖源)이 비를 세웠으며 전체 높이는 3.75m이고, 좌대의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과 용모양의 비머리(螭首)를 얹었다. 비문(碑文)은 숙종(肅宗) 때 우의정을 지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의 전서(篆書)이며, 비각은 1971년에 세운 것이다.

2022

신도비란 임금이나 벼슬이 높은 사람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으로, 대개 무덤 앞이나 무덤의 남동쪽에 세운다. 권태사 신도비는 안동 권씨 시조인 권행(權幸)을 기리기 위해 후손 권성원(權聖源)이 조선 현종 2년(1661)에 세웠다.

권행은 원래 김씨로서, 안동의 옛 이름인 고창 지역의 호족이었으며, 고려 태조 13년(930) 고창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을 때 태조를 도와 고려가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태조는 권행의 공을 인정하여 공신에 책봉하면서 태사의 벼슬과 권씨 성을 내리고, 고창에는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권태사 신도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사각형의 몸돌, 용무늬로 장식된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3.75m이다. 비문은 권행의 후손인 권시(權諰)가 지었고, 외손 계열 후손인 이경휘(李慶徽)가 글씨를 썼다. 몸돌 맨 위에 쓴 표제는 역시 외손 계열 후손인 허목(許穆)이 썼다. 비각은 1971년에 지은 것이다.

영문

  • Stele of Gwon Haeng

2016

This is the stele of Gwon Haeng, the founder of the Andong Gwon Clan. Originally, his surname was Kim, and he was a man of a powerful local family in the Andong area (called Gochang at the time). In 930, he supported Wang Geon, the founder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in defeating Later Baekje during the Battle of Gochang. In recognition of his illustrious achievement, the Goryeo king bestowed upon him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and a new surname of Gwon, and renamed the area “Andong,” meaning “pacifying the eastern area.”

The stele was erected by Gwon Seong-won, the 24th-generation descendant of Gwon Haeng, in 1661, and the epitaph was composed by Heo Mok (1595-1682) who was a renowned scholar and politician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pavilion for this stele was built in 1971.

The tomb of Gwon Haeng is located to the east of this stele, while Neungdongjaesa Ritual House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183),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and maintenance of the tomb, is to its north.

2022

This stele commemorate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Gwon Haeng, the founder of the Andong Gwon Clan. The stele was erected in 1661 by his descendant Gwon Seong-won (1602-1662).

Gwon Haeng was born to the Kim family, a powerful clan in the Gochang area (today’s Andong). In 930, during a battle that took place in Gochang-gun County between the kingdoms of Goryeo (918-1392) and Later Baekje (892-936), Gwon greatly contributed to the Goryeo army's victory. In recognition of his contributions, King Taejo (r. 918-943) bestowed him with the title of a meritorious subject and the honorary surname of Gwon. The king also renamed Gochang to Andong, meaning “Pacifying the East.”

This stele measures 3.75 m in height and consists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a rectangular body stone, and a capstone decorated with dragon designs. The text of the stele was composed by Gwon Haeng’s descendant Gwon Si (1604-1672) and calligraphed by Yi Gyeong-hui (1617-1669), whose mother was a descendant of Gwon Haeng. The stele's name was calligraphed by Heo Mok (1595-1682), whose mother was also one of Gwon's descendants. The pavilion housing the stele was built in 1971.

영문 해설 내용

2016

안동권씨(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신도비이다. 원래 권행의 성은 김씨로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호족이었으며, 930년 고려와 후백제가 싸운 고창전투에서 왕건(王建)을 도와 승리하였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후, 권행의 공을 인정하여 공신에 책봉하고 권씨를 사성(賜姓)했으며, 고창 지역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이 신도비는 1661년 권행의 24세손인 권성원(權聖源)이 세웠고, 비문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허목(許穆)이 지었다. 비각은 1971년에 지어졌다.

권행의 묘는 신도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권행의 묘제를 위한 능동재사(국가민속문화재 제183호)는 북쪽에 있다.

2022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 권성원(1602-1662)이 1661년에 세운 비석이다.

권행은 원래 김씨이며 고창(古昌, 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호족이었다. 930년 고창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을 때 태조(재위 918-943)를 도와 고려가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태조는 권행의 공을 인정하여 공신에 책봉하면서 권씨 성을 내렸고, 고창에는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이 신도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사각형의 몸돌, 용무늬로 장식된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3.75m이다. 비문은 권행의 후손인 권시(1604-1672)가 지었고, 외손 계열 후손인 이경휘(1617-1669)가 글씨를 썼다. 몸돌 맨 위에 쓴 표제는 역시 외손 계열 후손인 허목(1595-1682)이 썼다. 비각은 1971년에 지은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