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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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벽당
Hambyeokdang Pavilion
함벽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벽당
영문명칭 Hambyeokdang Pavilion
한자 涵碧堂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191-4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0호
지정(등록)일 1992년 7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벽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7

이 건물은 조선 명종(明宗) 때의 절충장군(折衝將軍) 강희철(康希哲)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지은 정자이다. 그 뒤 옥봉(玉峯) 권위(權暐)의 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함벽당 류경시(柳敬時, 1666~1737)의 소유가 되었다. 함벽당은 전주류씨(全州柳氏)로 임동 수곡(水谷)에서 태어났다. 숙종(肅宗) 20년(1694)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후 사헌부(司憲府)장령과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순천부사를 지냈다.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건립연대는 17세기로 전해지고 있으나, 건물 양식은 약간 후대의 건물로 보인다. 류경시가 죽은 후 100여년 뒤인 철종(哲宗) 13년(1862)에 대대적으로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천둥산 기슭에 있는데, 문을 들어서면 정자가 남향으로 앉아 있다. 온돌방 3칸을 남향으로 배치한 후 어간의 전면으로 2칸의 대청을 돌출시켜 ‘T’자형의 평면을 구성하였다.

2022

함벽당은 조선 시대의 문신 류경시(柳敬時)가 후학들을 가르치고 독서하는 장소로 이용하던 정자이다. 류경시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평가받았으며, 청렴하고 어진 정치를 펼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자의 이름은 류경시가 편지를 쓸 때 매번 본인을 함벽주인이라 칭하여 제자들이 당호로 함벽당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며, ‘푸르름 속에 잠겨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곳에는 무신 강희철(康希哲)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가 있었다. 강희철의 외손자인 권위(權暐)가 물려받았으나, 류경시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 정자를 매입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철종 13년(1862)에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것이다.

함벽당은 높은 축대 위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토석담*을 둘렀다. 온돌방 2개를 나란히 두고 방 앞으로 난간을 두른 대청을 돌출시켜, 정자로서는 보기 드문 ‘T’ 자형 평면을 구성하였다.


  • 토석담: 돌과 흙을 섞어 쌓은 담

영문

  • Hambyeokdang Pavilion

2017

This pavilion was originally built by General Kang Hui-cheol (?-?) after his retirement during the reign of King Myeongjong (r. 1534-1567). It was first called Hamgyeongdang after General Kang’s pen-name, but was later changed to Hambyeokdang after the pen-name of Ryu Gyeong-si (1666-1737), when the pavilion was acquired by Ryu. Ryu,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Joseon perio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94, and was known for his integrity and honesty as a local governor.

Though this building is said to have been built in the 17th century, its architectural style displays the characteristics of later times,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reconstructed in 1862, about 100 years after Ryu’s death. The building has a T-shaped layout, with three rooms in the back and an open-air wooden-floored hall extending outward in the front.

2022

Hambyeokdang Pavilion

Hambyeokdang Pavilion was used by the civil official Ryu Gyeong-si (1666-1737) as a place to teach his students and enjoy reading. Ryu was known as a man of high integrity, and his skills in the political and military fields were widely recognized. The name of the pavilion can be translated as “the Pavilion Drowning in Green.” Whenever Ryu wrote a letter, he signed himself as Hambyeok juin, meaning “the master of Hambyeok(dang Pavilion).”

Ryu purchased this pavilion upon his retirement from Gwon Wi (1552-1630), a grandson of the military official Gang Hui-cheol (1492-1583) who had this pavilion built for himself when he stepped down from his post. The building underwent a full-scale renovation in 1862.

The pavilion stands on a high stone platform facing south and is enclosed by a wall made of stone and clay. It features a T-shaped layout comprising two underfloor-heated rooms placed next to each other and a balustraded wooden-floored hall extending outward in the front. This kind of layout is rare for a pavilion.

영문 해설 내용

2022

함벽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류경시(1666-1737)가 후학들을 가르치고 독서하는 장소로 이용하던 정자이다. 류경시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평가받았으며, 청렴하고 어진 정치를 펼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자의 이름은 ‘푸르름 속에 잠겨 있는 집’이라는 뜻이며, 류경시는 편지를 쓸 때 매번 본인을 함벽주인이라 칭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무신 강희철(1492-1583)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가 있었다. 강희철의 외손자인 권위(1552-1630)가 물려받았다가, 류경시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 정자를 매입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862년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것이다.

함벽당은 높은 축대 위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토석담을 둘렀다. 온돌방 2개를 나란히 두고 방 앞으로는 난간을 두른 대청을 돌출시켜, 정자로서는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구성하였다.

참고자료

  • 함벽당,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83 -> 함벽당은 조선 명종 때의 무신 절충장군(折衝將軍) 강희철(康希哲)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세워 거주하던 곳이다. 그 후 옥봉(玉峰) 권위(權暐, 1552~1630)의 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함벽당(涵碧堂) 류경시(柳敬時, 1666~1737)의 소유로 바뀌었다. 처음에 집의 이름은 강희철의 호를 따라 함경당이라 하였는데, 영양 주실 출신의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1658~1737)이 함벽당 류경시를 항상 ‘함벽주인(涵碧主人)’이라 칭하고 후학들도 류경시를 ‘함벽선생’이라 불러 이름을 함벽당으로 바꾸었다. 류경시는 1694년(숙종 20)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순천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청백리로도 이름이 높았다. / 서쪽의 사주문(四柱門)으로 출입하는데, 문을 들어서면 남향으로 앉아 있고 주변에는 담장이 있다. 온돌방 3칸을 남향으로 배치한 후, 가운데 칸 앞으로 2칸의 대청을 돌출시켜 ‘T’자형의 평면을 구성하였다. 온돌방은 좌측의 2칸을 통간으로 꾸몄는데 오른쪽 방의 뒷면에는 벽장을 두었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툇마루를 둘렀으며 평난간을 설치하였다. 대청 부분은 겹처마이나 온돌방 부분은 홑처마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 류경시,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356
  •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안동 함벽당, 대구일보, 2020.7.7. https://www.idaegu.com/newsView/idg202007070040 ->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높다란 석축으로 말미암아 정자가 마치 누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쪽으로 난 작은 사주문(四柱門)을 지나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정자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이하게도 ‘T’자형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뒤편에 3칸의 온돌방 2개를 배치하고 가운데 칸 앞으로 2칸의 대청을 앞으로 길게 뽑아 놓았다. 평난간을 두른 우물마루 대청을 맞배지붕이 덮고 있다. / 함벽당은 세 번에 걸쳐 주인이 바뀌었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원래는 조선 명종 때의 절충장군 강희철이 관직에서 물러나 이 마을 가야촌에 살면서 처음으로 정자를 세우고 당호를 함경당(涵鏡堂)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외손자였던 북후면 도촌에 살던 옥봉 권위(1552~1630)가 정자를 물려받았다. 이 무렵 매원 김광계(1580~1646)가 인근의 봉정사를 유람하다가 함경당에 들러 친구로부터 주식(酒食)을 대접받은 일화가 그가 쓴 ‘매원일기’에 남아 있어, 함벽당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 후 함경당은 이 마을에 살다가 문과에 급제해 내외 관직을 역임하고 귀향한 류경시(1666~1747)의 소유가 돼 후학들을 가르치고 독서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다만 당호가 함경당에서 함벽당으로 바뀐 까닭은 이렇게 전해진다. 함경당의 새 주인이 된 류경시는 주위 사람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새로 당호를 짓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양 주실에 살던 외종형인 옥천 조덕린(1658~1737)이 그를 항상 “함벽주인(涵碧主人)”이라 칭했고, 문생과 후학들도 류경시를 “함벽선생(涵碧先生)”이라 부르면서 정자 명칭이 어느덧 함벽당으로 정착됐고 또 류경시의 아호(雅號)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현재의 건물은 창건 당시인 17세기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류경시가 작고한 후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1862년(철종13)에 대대적으로 중건했음이 건축 수법이나 ‘중건기’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온통 천지가 짙푸른 녹음 속에 묻혀 있는 이즈음에 함벽당 난간마루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푸르름 속에 잠겨 있는 집”이라는 당호가 가진 의미가 저절로 깨우쳐진다.
  • 전주류씨 함벽당종가 : 발간사 유적과 유물, 전주류씨 22세손 류병훈의 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2018.11.09. https://blog.naver.com/hyuni1121/221395323064 ->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국학자료목록집 『전주류씨 함벽당종가』 내용 확인 가능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광평 2리 1252번지에 위치하고 현재 경북 문화재자료 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자는 원래 명종 때의 절충장군 강희철이 세운 함경당인데 뒤에 장군의 외손 권위가 인수 받아 살다가 다시 18세기 초반 함벽당涵碧堂 류경시柳敬時(1666~1737)가 매입하여 주인이 되었다. 류형진이 지은 함벽당중수기와 류영희柳泳熙의 부탁을받고 1955년에 지은 김형칠의 함벽당기에 함벽당의 유래를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이황이 권응정의 함경당 시에 차운한 7언율시 2수는 다음과 같다.
  • 강희철, 고전용어 시소러스, 한국고전번역원. http://thesaurus.itkc.or.kr/dir/list?dataId=12267
  • 목심회, 『우리 정자: 경상도』, 도서출판 집, 2021, 576~5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