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석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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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석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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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고창 석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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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敞 石灘亭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
지정(등록)일 | 2021년 4월 9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
시대 | 조선후기 |
수량/면적 | 1필지 674㎡ |
웹사이트 | 고창 석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석탄정은 석탄 유운(石灘 柳澐)이 선조 14년1581에 건립한 정자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이곳으로 옮겨와서 석탄정에서 고을 선비들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며 풍류를 즐겼다. 그는 청암 찰방*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후손들이 사라진 석탄정을 순조 30년(1830)에 새로 지었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고쳐가면서 학문을 익히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 정자는 규모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이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구들이 설치된 방을 제외하고 바닥은 모두 마루이며, 방 뒤쪽 가운데 마루는 높은 누마루로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두었다. 처음 석탄정의 동쪽과 서쪽에 상풍란(爽風欄)과 영월헌(迎月軒)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석탄정 북쪽에 상풍루를 지으면서 옮겨 걸었다. 또 고종 때 관료문인인 판서 서헌순, 연재 송병선이 석탄정을 다시 세운 유래를 쓴 글과 대한제국기 유학자인 심석 송병순, 간재 전우 등의 시를 새긴 현판도 있다.
석탄정은 전라북도 누각과 정자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평면은 호남지방 정자의 일반적 형태이지만, 방 위에 만든 다락은 다른 정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 청암 찰방 : 청암은 지금의 전남 장성에 있던 조선시대 역참이고, 찰방은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품의 지방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