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생담정사
안동 생담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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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생담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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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 苼潭精舍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점곡로 186-36 (일직면, 생담정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0호 |
지정(등록)일 | 2009년 7월 6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생담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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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생담정사는 의성김씨 중 구미리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입향조 김근(金近, 1579~1656)을 추모하고, 가문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어졌다.
김근은 광해군 7년(1615)에 이곳에 터를 잡았으며,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 자리는 본래 김근이 ‘생담(笙潭)’이라 이름 붙인 초가집이 있던 곳이다. 이후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의 주도로 정조 19년(1795)에 기와를 올린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정사의 이름은 김근이 자신의 집에 붙인 것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건물 왼편에는 판벽을 세운 마루방이 있고, 오른편에는 온돌방이 있다. 건물 전면과 왼쪽 측면에는 툇마루를 시설했다. 마루방 중간에는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는 대들보를 보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생담정사 뒤편에 있는 계단을 따라 100m가량 올라가면 김근의 위패를 모신 귀(구)암정사가 있다.
- 마루에는 김근의 호 ‘오우당(五友堂)’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다. 김근은 일찍이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생담에 손수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 등 군자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의 식물을 심어 놓고 오우당(五友堂)이라 부르고는 소요자적하는 은거의 장소로 삼았다.
- 정면에 있던 계단을 없애고 막아 놓았으며, 뒤쪽 담장을 허물어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1차 수정
생담정사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김근(金近, 1579~1656)을 추모하고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정조 19년(1795)에 지어졌다.
김근은 안동 출신으로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구미리로 이주하여 초가를 짓고 은거하였으며, 이후 의성김씨 후손들이 구미리에 대대로 살게 되었다.
생담정사가 있는 자리에는 원래 김근이 머물던 초가집이 있었다고 하며,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이 주도하여 기와를 올린 건물을 새로 지었다. 정사는 왼쪽에 판벽을 세운 마루방이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다. 앞면과 왼쪽 옆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정사 뒤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김근의 위패를 모신 구암정사(경상북도 기념물)가 있다.
참고자료
- 생담정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699 -> 생담정사는 1795년 김근을 추모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기 위하여 6세손 김굉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당초에는 초옥을 지어 ‘생담(笙潭)’이라고 이름하였는데 후손들이 김근의 유덕을 기려 유허에다 생담정사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강당만 남아 있다. 생담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정면에 있던 계단을 없애고 막아 놓았으며, 뒤쪽 담장을 허물어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 김근,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262 -> 1623년(인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파방되었고 1642년에 다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였다. 일찍이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생담에 손수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 등 군자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의 식물을 심어 놓고 오우당(五友堂)이라 부르고는 소요자적하는 은거의 장소로 삼았다.
- 효와 후학의 정사(精舍), 안동의 생담정사와 귀암정사_181217, 겨울섬, 개인 블로그, 2018.12.20. https://gotn.tistory.com/620 -> 생담정사(笙潭精舍)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는 조선후기의 정사이며 귀암정사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1795년 의성김씨 입향조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을 추모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기 위하여 6세손 김굉(金宏, 1739~1816)의 주도로 건립 되었으며, 이곳은 김근(金近)의 옛 거주지로 당초에는 초옥을 지어 "생담(笙潭)"이라고 하였는데, 김근의 유덕을 기려 유허에다 생담정사(笙潭精舍)를 세웠으며 현재는 강당만 남아 있으며, 정면에 있던 계단을 없애고 축대로 막아 놓았으며 뒤쪽 담장을 허물어 입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정사(精舍)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一"자 형의 팔작지붕의 겹처마 구조의 건물로 중간설주의 유구와 청방간 창호의 구성수법이 독특하면서도 그 이전의 모습을 잘 이어오고 있으며, 대량과 창방 등에서 당시의 치목수법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건실한 부재의 사용으로 건물규모가 아담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포대공의 모습과 공포의 모습에서 정성을 들인 건물로 여겨지며 연대를 19세기 이전으로 올려 볼 수 있는 양식으로 건립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히 잘 남아 있는 건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마루에는 입향조 김근(金近)의 호를 따온 오우당(五友堂)의 현판이 있어 현판 획의 꺽임이 분명하고 붓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경쾌하여 시원스러움과 믿음을 함께한 행서체의 글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