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생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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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생담정사는 의성김씨 중 구미리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입향조 김근(金近, 1579~1656)을 추모하고, 가문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어졌다.

김근은 광해군 7년(1615)에 이곳에 터를 잡았으며,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 자리는 본래 김근이 ‘생담(笙潭)’이라 이름 붙인 초가집이 있던 곳이다. 이후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의 주도로 정조 19년(1795)에 기와를 올린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정사의 이름은 김근이 자신의 집에 붙인 것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건물 왼편에는 판벽을 세운 마루방이 있고, 오른편에는 온돌방이 있다. 건물 전면과 왼쪽 측면에는 툇마루를 시설했다. 마루방 중간에는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는 대들보를 보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생담정사 뒤편에 있는 계단을 따라 100m가량 올라가면 김근의 위패를 모신 귀(구)암정사가 있다.
  • 마루에는 김근의 호 ‘오우당(五友堂)’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다. 김근은 일찍이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생담에 손수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 등 군자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의 식물을 심어 놓고 오우당(五友堂)이라 부르고는 소요자적하는 은거의 장소로 삼았다.
  • 정면에 있던 계단을 없애고 막아 놓았으며, 뒤쪽 담장을 허물어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1차 수정

생담정사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김근(金近, 1579~1656)을 추모하고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정조 19년(1795)에 지어졌다.

김근은 안동 출신으로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구미리로 이주하여 초가를 짓고 은거하였으며, 이후 의성김씨 후손들이 구미리에 대대로 살게 되었다.

생담정사가 있는 자리에는 원래 김근이 머물던 초가집이 있었다고 하며,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이 주도하여 기와를 올린 건물을 새로 지었다. 정사는 왼쪽에 판벽을 세운 마루방이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다. 앞면과 왼쪽 옆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정사 뒤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김근의 위패를 모신 구암정사(경상북도 기념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