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재
금곡재 |
|
대표명칭 | 금곡재 |
---|---|
한자 | 金谷齋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4길 25 (금소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2호 |
지정(등록)일 | 1993년 2월 2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금곡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원래 금수서당(錦水書堂)이었다. 이 서당은 예천임씨(醴泉林氏)의 발의에 의해 조선 순조(純祖) 10년(1810)에 지어졌고, 헌종(憲宗) 15년(1849)에 다시 수리하여 오늘날의 규모로 확장되었다. 그 뒤 금수서숙(錦水書塾)으로 있다가 1928년에는 현재와 같이 입향조인 야은(野隱) 임억숙(林億淑, 1546~1605)의 묘소를 관리하고 시제를 올리는 재사로 그 기능이 바뀌었다.
이 건물은 약산 기슭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一’자형 기와집이다. 좌측의 사각문을 통해서 출입하고 좌측 담장 밖에 주사(廚舍)가 있다. 중당협실형으로 중앙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그리고 앞쪽에 퇴칸을 들이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안동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의 주사와 더불어 안동지역의 재사 건축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수정 국문
초고
금곡재는 현재 예천임씨 중 안동 지역에 처음 정착한 임억숙(林億淑, 1546~1605)의 묘소를 관리하고 시제를 올리는 재사로 쓰이고 있다.
이곳은 조선 순조 10년(1810)년에 ‘금수서당(錦水書堂)’으로 처음 지어졌고, 헌종 15년(1849)에 수리하면서 지금의 규모로 확장되고 이름도 ‘금수서숙(錦水書塾)’으로 바꾸었다. 1928년부터는 재사로 기능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3일에 제사를 지낸다.
건물은 중앙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전면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시설했다.
뒤에는 예천임씨 선조들의 문집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있다. 좌측 담장 바깥에는 관리인이 거주하던 주사(廚舍)가 있는데, 안동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이다.
1차 수정
금곡재는 임억숙(林億淑, 1546~1605)의 묘소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재사이다. 금곡재가 위치한 금소리는 임억숙이 정착한 이후 예천임씨 후손들이 대대로 사는 집성촌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순조 10년(1810) 금수서당(錦水書堂)으로 처음 지어졌고 헌종 15년(1849)에 증축되었다. 1928년부터 재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제사를 지낸다.
금곡재는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쪽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재사 뒤에는 예천임씨 선조들의 문집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있다. 재사 왼쪽 담장 바깥에는 관리인이 거주하던 주사(廚舍)가 있다.
참고자료
- 금곡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64 -> 금곡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기와집이다. 중당협실형으로 가운데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계자 난간을 둘렀다. 좌측과 우측의 온돌방은 2칸으로 잡고, 정면 창호는 하부에 머름을 둔 쌍여닫이 교살문을 설치하였다. 마루 쪽으로는 궁판을 끼고 교살문과 쌍여닫이 맹장지문을 달아 마루와 연결시켰다. 마루 뒤쪽에는 하부에 머름을 두고 쌍여닫이 골판문을 달았다. 뒤편에 ‘세복당(世馥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장판각(藏板閣)이 있다. 장판각에는 임만휘(林萬彙), 임응성(林應聲)의 문집 및 『계서예집(溪書禮輯)』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좌측 담장 밖에는 주사(廚舍)를 두었다. 주사는 금곡재의 관리자가 거주하던 곳으로 안동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 금소리 예천임씨 집성촌,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