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고택
묵재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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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묵재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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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默齋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장태골길 38 (소산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5호 |
지정(등록)일 | 1989년 5월 2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3동 |
웹사이트 | 묵재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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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안동김씨들이 여러 대에 걸쳐서 살아온 집이지만 언제 누가 지었는지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사당채의 암막새 기와 내림새 면에 조각된 ‘정덕(正德)10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사당은 1516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소요산(素耀山) 기슭에 터를 잡아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본채의 평면이 옛 가옥 형태에서 많이 나타나는 ‘H’자형이며, 그 앞에 ‘一’자 행랑채가 놓여져 튼‘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특히 본채에 사랑 부분이 포함된 평면구성은 본 고택이 이 같은 유형의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3량가의 간소한 집이지만 동자기둥의 윗 부분을 빗 깎고 그 위에 소로와 장여를 싸서 바친 안대청 상부의 대공은 주택 건축에서 보기 드문 수법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안동 김씨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살림집이다. 집의 이름은 안동에 김씨 가문의 터전을 다졌던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의 양아들 김종윤(金宗胤)의 호를 딴 것이다.
이 집이 누구에 의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와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사당은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은 H자형의 본채, 본채 앞에 있는 행랑채, 오른쪽 언덕 위에 자리한 사당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 아래의 초가 건물은 근대에 세운 사당채이다.
사랑 공간이 포함된 본채의 구조, 좁은 통로를 두고 사랑방 뒤쪽에 도장방을 배치한 공간배치 방식, 행랑채의 구성 등을 볼 때 이 집은 마을에 있는 여러 고택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채의 부엌과 대청 천장의 마감 방식 역시 주택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수법으로, 이 집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당 아래쪽에 있는 초가 건물은 근대에 세워진 사당채이다. -> 안동 관광 홈페이지 내용 / 언제,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정보는 검색 안됨.
*행랑채 지붕의 현재 형태 확인 필요(2015년 촬영 기준 초가지붕을 올린 것으로 보이나, 최근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고, 초가지붕으로 보수한 시점도 검색이 불가능함.)
- 집의 이름은 청백리로 유명했던 김계행(1431-1517)의 대를 이은 김종윤의 호를 따서 지었다. 김계행은 이 마을의 안동 김씨 임향조 김삼근의 둘째 아들이다.
- 행랑채를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기단을 높여 지은 본채 건물이 보인다. 중앙부의 왼쪽에는 안방이, 오른쪽에는 마루(안대청)가 있다. 왼쪽 날개채에 부엌과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건물 외부를 향해 툇마루를 시설한 사랑 공간과, 그 뒤에 배치한 도장방 등이 있다.
- 이 집의 서쪽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바로 인접해 있는 가옥은 김삼근의 옛집이다.
1차 수정
묵재고택은 안동김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묵재고택이 있는 소산마을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삼근(金三近, 1390~1465)이 이주한 후 안동김씨 후손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집의 이름은 김삼근의 둘째 아들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의 양아들인 김종윤(金宗胤)의 호를 딴 것이다.
집은 ‘H’자형 본채와 ‘一’자형 행랑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 오른쪽 언덕 위에 위치한 사당은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채는 안방과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날개채에는 부엌과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도장방과 사랑방이 있다. 본채에 사랑방을 두고 사랑방 뒤쪽에 도장방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보아, 이 집은 마을에 있는 여러 고택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 기존 문안과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는 사당 기와에 새겨진 ‘정덕10년(正德十年)’이라는 기록이 언급되어 있는데, 정덕10년은 1515년임. 기와의 연호명 관련 내용은 생략함.
갤러리
- 디지털안동문화대전 설명을 토대로 그림. 확인 필요.
참고자료
- 묵재고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93 -> 묵재 고택 관련 인물인 김종윤(金宗胤)은 자가 찬선(纘先)이고 호가 묵재(默齋)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사손(嗣孫)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은 봉사(奉事)를 지냈으며, 문학과 행실이 뛰어났다. 대제학 김학진(金鶴鎭)이 묘명을 지었다. / 묵재 고택의 몸채는 ‘H’자형 평면이며 그 앞에 ‘ㅡ’자형 행랑채가 놓여져 튼 ‘ㅁ’자형을 이루었다. 몸채의 내정을 향하여 남면한 중앙부는 2칸으로, 우측 1칸은 앞뒤 통간(通間)의 온돌방이고 우측 1칸은 앞뒤 통간의 안대청이다. 안방의 좌측에 3칸이 넘는 장방형(長方形)의 부엌이 접하였고 그 앞에 온돌방 1칸이 설치되어 몸채의 좌익(左翼)을 이루었다. 안대청의 우측에는 좁은 통로(마루)를 가운데 두고 후방에 도장방 1칸이 놓였고, 전방에는 통간 온돌방·사랑방이 배치되어 우익(右翼)을 이루었다.(확인 어려움) 2통간의 사랑방 앞쪽 1칸은 원래 사랑 마루방이던 것을 온돌방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와 같이 몸채에 사랑 부분이 포함된 평면 구성은 동야 고택(東埜古宅)과 같은 형식을 보이고 있으나 묵재 고택이 사랑방 뒤쪽에 있는 도장방의 배치나 행랑채의 구성으로 보아 더 고식(古式)인 것으로 생각된다. 묵재 고택은 3량가의 간소한 집이지만 동자주(童子柱)의 윗부분을 비껴 깎고 그 위에 소로와 장혀를 휩싸서 바친 초각한 부재로 이루어진 대공과 ‘X’자형 받침 위에 ‘+’형으로 짜서 올린 부엌 상부의 대공은 주택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수법이다.
- 묵재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443700850000 -> 2015년 촬영사진(행랑채 초가지붕) / 사랑방 뒤쪽에 있는 도장방의 배치나 행랑채의 구성 등으로 보아 이 동네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집임을 알 수 있다.
- [방문하기] 소산마을 비안공구택 옆에 있는 " 묵재고택 " 한번 가보기, youtube - 인생의 모험, https://www.youtube.com/watch?v=PaWJegwZl-Y -> 2018년 12월 촬영본(행랑채는 초가지붕), 고택 내부 구조도 촬영.
- 묵재고택, 안동 관광 http://www.tourandong.com/public/sub4/sub3.cshtml?seq=318&page=23&searchKey=0&search= -> 소약산록에 터를 잡아 비안공구택의 동쪽에 이웃하여 동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몸채는 H자 평면이며 그 앞에 一자 행랑채가 놓여져 튼 구자(口字)를 이루게 되었다. 몸채의 우측(동측) 언덕 위에는 사당이 세워져 있는데 몸채의 향과는 약간 각을 이루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 앞 낮은 터에 세워져 있는 사당채는 근대의 것이다. / 사당은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전면을 개방한 퇴칸 형식을 취한 3량 맞배지붕집이다. 툇보의 머리는 기둥에서 삼분두형으로 내밀고 있어 매우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칸의 정면에는 두짝열개문이고, 양 퇴칸에는 폭이 넓은 외여닫이문을 주칸에 꽉 차게 달아놓아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사당 양측면은 고정광창으로 격자살 짜임으로 되어 있다. / 몸채에 사랑부분이 포함된 유형의 주택 중에서는 가장 원초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또 안대청 상부와 부엌 상부의 대공등은 특히 고식의 형태로 주택건축에서는 흔치 않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