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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양씨 종중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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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양씨 종중문서
남원양씨 종중문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남원양씨 종중문서
한자 南原楊氏 宗中文書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595번지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2호
지정(등록)일 1995년 6월 20일
분류 기록유산/문서류/국왕문서/교령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괄(4종 919건)
웹사이트 남원양씨 종중문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문서는 순창군에 세거(世居)하는 남원양씨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해온 문서로 임진왜란 이후의 문서들이다. 교지(敎旨) · 교첩(敎牒) 10건, 소지(所志) 87건, 백패(白牌) 1건, 책자(冊子) 1건 등 총 4종 99건이며, 조선 후기 문서 양식 및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교지와 교첩은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을 담은 문서나 관직을 내리는 문서를 말한다. 대부분 양시정(楊時鼎)이 인조 2년(1624)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면서 받은 것이고, 그 밖에는 양시정의 5대손인 양몽인(楊夢寅)이 영조 11년(1735) 생원시에 합격하였을 때 그의 성명, 거주지를 기록한 문서 등이 있다.

소지는 관부의 결정과 도움이 필요할 때 올리는 소장, 청원서, 진정서 등을 말한다. 남원양씨 가문에 전해지는 소지 중 주목할만한 것은 남의 땅에 몰래 묘를 쓰는 투장(偸葬)과 관련된 것이다. 순창군 적성면 농소리에는 남원양씨 순창 입향조인 양사보(楊思輔)의 어머니 이씨부인의 묘가 있었는데, 이 묘 근처에 살고 있던 정씨들이 투장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그 묘를 파내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소지가 숙종 46년(1720)에서 1905년까지 185년간에 걸쳐 계속 작성되었다. 그 밖의 소지도 모두 선산(先山)에 관계된 것이며, 몰래 나무를 베어가는 일을 금해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순창군에 세거하는 남원양씨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해온 문서들이다. 교지와 교첩 10건, 소지 87건, 백패 1건, 책자 1건 등 총 4종 99건이며, 조선 후기 문서 양식 및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교지와 교첩은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을 담은 문서나 관직을 내리는 문서를 말한다. 대부분 양시정이 1624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면서 받은 것이고, 그 밖에는 양시정의 5대손인 양몽인이 1735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을 때 그의 성명, 거주지를 기록한 문서 등이 있다.

소지는 관부의 결정과 도움이 필요할 때 올리는 소장, 청원서, 진정서 등을 말한다. 남원양씨 가문에 전해지는 소지 중 주목할만한 것은 남의 땅에 몰래 묘를 쓰는 투장과 관련된 것이다. 순창군 적성면 농소리에는 남원양씨 순창 입향조인 양사보의 어머니 이씨부인의 묘가 있었는데, 이 묘 근처에 살고 있던 정씨들이 투장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그 묘를 파내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소지가 1720년에서 1905년까지 185년간에 걸쳐 계속 작성되었다. 그 밖의 소지도 모두 선산(先山)에 관계된 것이며, 몰래 나무를 베어가는 일을 금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