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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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일반적인 반가상(半跏像) 양식과는 달리 왼발을 오른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발은 내리고 있다. 높이는 79cm이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어 지장보살로 여겨진다. 이런 모습의 지장보살상은 조선 초기까지 더러 보인다. 얼굴은 형식화가 엿보이지만 풍만하고, 체구는 다소 무겁고 둔해 보이지만 친근감을 준다. 옷은 독특하게도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다. 두건과 함께 친밀감을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불상을 올린 대좌는 아래쪽만 보이는데, 연꽃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발 받침대도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고려시대 이후에는 석조불이 주로 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화강암이 아니라 점판암이 사용된 점도 특이하다. 중흥사 반가상이 소중한 이유는 불상 중에 반가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성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불상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며, 모든 중생을 구원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는 보살인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어 지장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의 지장보살은 조선 초기까지 더러 보이므로, 이 불상의 조성 연대를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불상은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접어 연꽃으로 장식한 대좌 위에 둔 반가 자세를 하였다. 대좌에는 발 받침대도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는데, 가슴 앞에서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석조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불상은 점판암을 사용해 제작되었다. 코와 목, 양 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한 것이다. 불상의 높이는 79cm이다.

본래 중흥사 삼층석탑 옆에 있었던 이 불상은 도난을 당해 1978년 서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요사채에 모셔져 있다.

  • 중흥사(中興寺)는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운암사(雲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찰로,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 끝에 불에 타 폐사되었다. 지역 독지가인 하태호(河泰鎬)의 후원으로 1963년 중창한 이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차 수정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반가 자세를 하고 앉은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조성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석조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드는데, 이 불상은 점판암을 사용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는 접어 대좌 위에 놓았다. 옷은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으며, 가슴 앞에는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하였다. 코와 목, 양 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한 것이다. 불상의 높이는 79cm이다.

본래 중흥사 삼층석탑 옆에 있었던 이 불상은 도난을 당해 1978년 서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요사채에 모셔져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일반적으로 석조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드는데, 이 불상은 점판암을 사용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는 접어 대좌 위에 놓았다. 옷은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으며, 가슴 앞에는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하였다. 코와 목, 양 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한 것이다. 불상의 높이는 79cm이다
      ⇒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는 접어 대좌 위에 놓았다. 옷은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으며, 가슴 앞에는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하였다. 코와 목, 양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 처리되어 있다. 불상의 재료로 점판암을 사용한 점이 독특하며, 높이는 79cm이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조선시대에 등장한 반가상의 의미와 이 상이 지니는 조형적 특징을 다음과 보완해주면 좋겠습니다.)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반가 자세를 하고 앉은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조성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의 반가상은 주로 미륵보살의 도상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의 우협시 지장보살상, 동국대 박물관 소장 목조지장보살반가상, 목포 달성사 명부전 지장보살반가상처럼 주로 지장보살상의 도상으로 사용되었는데, 중흥사 반가상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조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드는데, 이 불상은 점판암을 사용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는 접어 대좌 위에 놓았다. 옷은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으며, 가슴 앞에는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하였다. 코와 목, 양 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한 것이다. 불상의 높이는 79cm이다. 꾹 다문 입과 근심어린 듯한 눈매, 한쪽으로 약간 기울인 고개의 표현 등을 통해 고민에 잠긴 지장보살의 구원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
      본래 중흥사 삼층석탑 옆에 있었던 이 불상은 도난을 당해 1978년 서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요사채에 모셔져 있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반가 자세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는 접어 대좌 위에 올려놓았다.

2차 수정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반가 자세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조성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된다.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는 접어 대좌 위에 올려놓았다. 옷은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으며, 가슴 앞에는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하였다. 코와 목, 양 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꾹 다문 입과 근심어린 듯한 눈매, 한쪽으로 약간 기울인 고개 등을 통해 고민에 잠긴 지장보살의 모습을 표현했다. 불상의 재료로 점판암을 사용한 점이 독특하며, 높이는 79cm이다.

본래 중흥사 삼층석탑 옆에 있었던 이 불상은 도난을 당해 1978년 서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요사채에 모셔져 있다.